중국 파운드리 산업이 첨단 공정에서는 여전히 기술 격차를 보이고 있지만, 생산 규모와 시장 점유율 면에서는 이미 세계 판도를 흔들고 있다. 중국반도체제조국제공사(이하 SMIC)를 비롯한 중국 주요 반도체 제조사들은 EUV 장비 없이 7나노급 칩을 양산하며 기술 독립을 가속화하고 있어, 한국 반도체 산업이 ‘질적 우위’만으로는 안심할 수 없다는 경고가 나온다.

AI 반도체 전쟁의 저자 김용석 가천대 교수
AI 반도체 전쟁의 저자 김용석 가천대 교수

중국, “양으로 승부한다”…글로벌 생산능력 30% 시대 눈앞

중국은 반도체 산업 제재 속에서도 ‘양적 팽창’을 무기로 세계 파운드리 시장을 잠식 중이다. 시장조사기관 Yole Group과 SEMI의 분석에 따르면, 2030년 중국의 파운드리 생산능력은 전 세계의 30%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SMIC는 지난해 글로벌 파운드리 매출 순위에서 3위권에 진입했으며, 화홍반도체, JCET 등 중견 기업들도 빠르게 성장 중이다.

이 같은 성장은 미국의 기술 봉쇄에도 불구하고 중국 내 정부 보조금, 지방정부 인센티브, 내수 수요 확대가 결합된 결과다. 산업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공급망의 ‘중국화’가 이미 궤도에 올랐다”고 분석한다.

“EUV 없이 7나노”…제한된 환경 속 기술 독립 실험

기술적으로는 “아직 TSMC·삼성전자와의 격차가 존재한다”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그러나 최근 SMIC가 EUV(극자외선) 장비 없이 7나노급 칩을 생산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상황은 복잡해졌다.

미국의 수출 규제 탓에 첨단 노광장비 확보가 어려운 중국은 DUV(심자외선) 장비를 다중패터닝 방식으로 개조해 자체적인 7나노급 공정을 구현하고 있다. 화웨이가 올해 상반기 출시한 노트북에 탑재된 ‘쿤펑(Kunpeng)’ 칩이 바로 이 공정으로 생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불가능할 것”이라던 서방의 예측을 깨뜨린 상징적 사건이었다. 물론 수율과 전력효율 면에서는 여전히 한계가 존재하지만, 기술 독립의 첫 단계를 밟았다는 점에서 산업적 의미가 크다.

‘첨단 공정’ 아닌 ‘대량생산 생태계’

중국의 전략은 ‘최첨단’보다 ‘대량·보급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자동차, 가전, IoT, 산업용 반도체 등 수요가 많은 성숙공정 시장을 장악해 생태계의 기초를 깔겠다는 계산이다.

이는 한국과 대만이 초미세 공정 중심으로 경쟁하는 구도와는 다른 접근법이다. 중국은 파운드리–패키징–설계–시스템을 하나로 묶는 ‘통합형 공급망’을 구축하며, 사실상 자국 내에서 반도체 자립 생태계를 완성해가고 있다.

이런 전략은 단기간의 기술 추격을 넘어서 ‘시장 지배력’이라는 형태로 변환된 경쟁력을 만들어내고 있다.

한국, “질로만 버틸 수 없다”

김용석 가천대 교수는 최근 열린 ‘AIoT용 시스템반도체 워크숍’에서 “한국은 이제 기술력만으로는 승부할 수 없는 단계에 들어섰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국은 이미 설계·제조·소프트웨어가 완결된 통합 생태계를 구축했다”며 “한국이 세트기업 중심으로 칩을 직접 설계·내재화하지 않으면 AI 반도체 시대의 주도권을 잃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현재 국내 팹리스 수는 약 150개 수준으로, 중국의 3,600여 개에 비해 압도적으로 적다. 단순히 설계기술을 발전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세트기업–팹리스–파운드리가 협업하는 ‘삼각 연계 구조’를 갖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기술 격차는 남았지만, 시간은 중국 편

전문가들은 “중국의 기술력은 아직 삼성·TSMC의 3나노급에 미치지 못한다”면서도 “속도와 양에서의 추격은 이미 시작됐다”고 평가한다.

특히 AI 반도체, 자동차 반도체, IoT 센서 등 ‘온디바이스 AI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지금, 중국이 성숙공정 기반의 칩 공급을 확대하면 한국의 산업 생태계도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결국 향후 5년은 ‘양의 시대’를 맞은 중국과 ‘질의 전략’을 유지해야 하는 한국 사이의 속도전이자 구조전이 될 것으로 보인다.

AI 반도체 시대의 승부가 공정 미세화에서 속도·생태계·시장 선점력의 싸움으로 이동하고 있다.

테크인싸 칼럼니스트  tlswnqo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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