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가 움직이는 곳이 곧 경쟁력이다
■ “로봇이 킥복싱을 했다”
지난 10월, 대구 엑스코 전시장에서 중국 로봇 기업 유니트리(Unitree)의 휴머노이드 G1이 등장했을 때, 관람객들은 잠시 말을 잃었다. 로봇이 글러브를 낀 채, 사람처럼 공방전을 펼치는 모습에서 ‘피지컬 AI(Physical AI)’라는 단어가 현실로 다가왔다.
그런데 그 화려한 쇼의 이면에는 더 큰 메시지가 숨겨져 있었다.
“중국은 이미 공장을 돌리고 있고, 한국은 여전히 전시장을 돌고 있다.” 이 한 줄이 현재 동아시아 휴머노이드 산업의 현주소를 정확히 요약한다.
■ 중국의 질주는 데이터에서 시작됐다
중국의 휴머노이드 산업을 이해하려면 데이터 공장(data factory)이라는 개념을 먼저 봐야 한다.
2023년 상하이에 세워진 스타트업 애지봇(AgeeBot)의 ‘로봇 데이터 공장’에는 하루 3만~5만건의 실세계 데이터가 생산된다.
100대의 로봇이 실제 물류 작업, 청소, 손동작, 걷기 등을 반복하며 센서와 카메라를 통해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 데이터는 곧 AI 학습의 연료가 된다.
흥미로운 건, 이 공장에서 생산된 데이터의 80%가 엔비디아의 휴머노이드 파운데이션 모델 ‘아이작 그루트 N1’ 학습에 사용됐다는 점이다. 중국은 로봇이 움직일 때마다 생기는 ‘현실 데이터’를 석유처럼 정제하고 수출하기 시작한 셈이다.
이것은 단순한 기술적 진보가 아니다. ‘데이터의 산업화’, 다시 말해 데이터를 공산품처럼 대량 생산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 샤오펑의 ‘아이언’, 피지컬 AI의 선언
지난 11월 5일, 광저우 사이언스파크. 전기차 기업 샤오펑(Xpeng)의 CEO 허샤오펑이 무대 위에 올려놓은 것은 ‘2세대 휴머노이드 로봇 아이언(IRON)’이었다.
그는 “머지않아 사람들은 샤오펑의 전기차를 사듯, 샤오펑의 로봇을 구입하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
이 말은 허풍이 아니다. 그는 실제로 내년 4월부터 1000대 양산을 시작해 연말에는 대규모 공급 체계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했다.
2세대 아이언은 82개의 관절을 가진다. 사람처럼 걷고, 사람처럼 균형 잡고, 사람처럼 도구를 쥐는 구조적 완성도를 의미한다.
샤오펑은 이제 전기차 기업이 아니라, ‘AI를 체화(embody)’하는 기업, 즉 피지컬 AI 기업으로 변모하고 있다.
중국 언론들은 이 장면을 “전기차 이후의 대전환점”이라고 평가했다.
■ 한국의 현실, ‘AI 허브’라는 작은 수조 속에서
반면 한국의 휴머노이드 산업은 아직 ‘데이터의 바다’가 아닌 ‘데이터 수조’ 안에서 움직이고 있다.
정부가 운영 중인 AI 허브(AI Hub)는 그동안 로보틱스·자율주행·이미지 등 다양한 데이터를 구축해왔지만, 현장 다양성과 국제 호환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피하지 못했다.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은 최근 보고서에서 “한국의 피지컬 AI는 기초 단계에 머물러 있으며, 실시간 데이터 확보와 표준화 측면에서 제약이 크다.”고 밝혔다.
이 말은 곧 “한국의 로봇은 아직 실제 세상에서 충분히 걸어보지 못했다”는 뜻이다.
현재 한국의 로봇 데이터는 주로 실험실 환경에서 생산된다.
항만, 병원, 공항 같은 복잡한 공간에서의 실제 데이터는 여전히 부족하고, 그 결과 로봇은 현실을 배운 적이 없다. 즉, 한국 로봇은 아직 ‘세상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는 AI’다.
■ 중국은 ‘현장’, 한국은 ‘정책’에 갇혀 있다
중국은 정부가 병원·학교·공공시설을 실증 현장으로 개방하면서, 실제 데이터를 쌓을 수 있는 ‘현장형 생태계’를 만들었다.
반면 한국은 로봇 관련 정책이 여전히 공공기관 중심으로 설계돼 있고, 민간 기업이 자유롭게 데이터를 수집·공유하기 어려운 구조다.
이 차이는 곧 속도의 차이로 나타난다.
중국 로봇이 ‘달리는 이유’는 데이터를 가진 기업이 시장을 주도하기 때문이고, 한국 로봇이 ‘기어가는 이유’는 데이터를 만들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 인재 풀에서도 압도적인 격차
숫자는 냉정하다. 중국의 로봇 관련 대학 재학생 수는 58만 명, 전 세계의 42%를 차지한다. 이 숫자는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국가의 인공지능 내공을 보여준다.
로봇을 설계하고 데이터를 정제할 인재가 풍부하면, 산업 생태계는 ‘수직적으로 연결된 피라미드’를 형성한다.
반면 한국은 아직 ‘로봇 전공 인력 부족’, ‘산업별 파편화’, ‘민간 중심 R&D 연계 부족’이라는 세 가지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 피지컬 AI의 진짜 경쟁, 데이터 내재화 전쟁
결국 휴머노이드 전쟁의 본질은 얼마나 사람을 닮았느냐가 아니다. 얼마나 현실을 학습했느냐다.
AI가 사람의 표정을 흉내내는 건 어렵지 않지만, 사람처럼 균형을 잡고, 충돌을 예측하고, 환경을 읽는 것은 오직 실세계 데이터로만 가능하다. 이 데이터를 얼마나 확보하고, 얼마나 빠르게 내재화하느냐가 곧 경쟁력이다.
중국은 이미 ▲데이터 공장 ▲AI 모델 ▲로봇 양산의 삼각 엔진을 완성했고, 한국은 이제 그 도면을 그리기 시작했다.
■ “지금이 마지막 타이밍이다”
전문가들은 “2026년까지 한국이 피지컬 AI 실증 데이터를 확보하지 못하면, 휴머노이드 산업의 주도권은 완전히 중국으로 넘어간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은 이제 공공 중심의 느린 구축 방식을 이어갈지, 아니면 민간 중심의 실험적 생태계를 열지 선택해야 한다.
로봇이 현실을 배운다는 건, 결국 인간 사회의 복잡함과 예측 불가능성을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뜻이다.
한국이 그 ‘현실’을 데이터로 만들지 못한다면, 휴머노이드 산업은 영영 현실 속으로 걸어 나오지 못할 것이다.
테크인싸 칼럼니스트 tlswnqo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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