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프라·정책은 선진국급, 인재·투자는 후진국형
“AI 인프라는 세계 최고”…그러나 기술 격차는 여전
엔비디아 젠슨 황 CEO가 “한국은 AI 인프라 확충 속도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라 평가했지만, 그 찬사는 현실을 가리기엔 부족하다.
하버드대 벨퍼센터의 ‘전략기술 지도’에 따르면, 한국의 AI 경쟁력은 글로벌 9위에 머물렀다. 미국과 중국이 각각 1, 2위를 차지하며 기술력, 투자, 인재 확보 등 전 부문에서 압도적인 격차를 보였다.
한국은 초고속 인터넷, 반도체, 클라우드 인프라 등 기반 시설에서는 단연 강점을 지녔다. 그러나 AI 기술의 ‘소프트웨어적 완성도’ 모델 학습, 알고리즘 개발, 창의적 응용력에서는 아직 글로벌 무대의 ‘팔로워(follower)’에 머물러 있다.
인재는 떠나고, 투자는 줄었다
AI 경쟁의 본질은 자본보다 인재의 생태계다.
하지만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한국의 AI 인재 순유입은 OECD 38개국 중 35위로, ‘두뇌 유출(brain drain)’ 국가에 가깝다.
공부하고 실력을 쌓은 인재들이 국내 연구소가 아닌 미국·유럽 빅테크로 향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연구 환경, 보상 체계, 산업 연계성 등 모든 면에서 국내 생태계가 경쟁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스타트업 투자 격차는 더 크다. 2023년 기준 미국과 중국의 AI 투자액은 한국의 수십 배에 달했다. 정부 주도의 인프라 투자가 늘고 있지만, 민간 부문이 혁신을 주도하는 ‘AI 자생력’은 여전히 부족하다.
한 업계 관계자는 “AI 허브 도시를 만들겠다는 구상도 중요하지만, 결국 ‘사람’이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정부 주도의 ‘AI 드라이브’, 속도는 빠르지만 방향은 불투명
한국 정부는 올해 AI·반도체·양자기술을 중심으로 한 ‘12대 전략기술 로드맵’을 제시하며 ‘AI 3강’ 비전을 공식화했다. AI 공공데이터센터, 전국 AI 랜드마크 구축, AI 거점도시 지정 등 추진 속도는 분명 빠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정책의 핵심이 여전히 ‘하드웨어’에 치우쳐 있다는 것이다. GPU, 서버, 전산자원 확보보다 중요한 것은 국가 차원의 AI 윤리·표준·인재 순환 전략이다.
AI 생태계의 허리를 담당해야 할 중소기업과 연구자들이 여전히 정부 과제 의존형 구조에 묶여 있는 것도 문제로 꼽힌다.
‘소버린 AI’, 한국형 해법이 될 수 있을까
정부가 내세운 새로운 전략 키워드는 ‘소버린 AI’, 즉 자국 데이터와 연산 자원으로 독자적 AI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네이버클라우드, 업스테이지, SK텔레콤, NC AI, LG AI연구원 등 5개 기관을 ‘국가대표 AI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팀’으로 선정했다.
이들은 통계청·특허청 등 공공 데이터를 활용해 한국형 언어모델(LLM)을 개발 중이며, 연말부터 단계별 평가를 거쳐 최종 1개 팀만이 지원을 이어받는다.
하지만 이 전략 역시 ‘승자 독식 구조’로 흐를 가능성이 있다.
소버린 AI는 국가 주권의 상징이 될 수 있지만, 정부가 기술 경쟁의 심판이 되는 순간 혁신의 다양성이 사라질 위험도 커진다.
“언제 3강이 될까”보다 “어떻게 독자 생태계를 만들까”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AI 3강 진입은 단기간에 불가능하다.” 다만 “글로벌 인재와 자본이 한국으로 ‘머무를 이유’를 만드는 환경”이 조성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다.
AI 인프라가 깔리기 시작한 지금, 필요한 것은 선택과 집중, 그리고 사람 중심의 혁신이다. AI 경쟁의 승부는 GPU의 개수가 아니라, 그 GPU를 활용해 무엇을 만들어내느냐에 달려 있다.
신주백 기자 jbshin@kmjourn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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