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에서 ‘한국의 유니클로’로 진화하기까지
스트리트 패션 동호회에서 출발해 4:3:3 매출 구조와 오프라인 확장으로 판을 키운 무신사의 성장 전략
무신사(MUSINSA)의 출발점은 너무도 소박했다. 2001년, 한 고등학생이 좋아하는 운동화 사진을 올리기 위해 만든 온라인 커뮤니티, 이름도 직관적인 ‘무진장 신발 사진 많은 곳’. 지금 기준으로 보면 그냥 발매 정보 공유하는 취미 카페에 가까웠지만, 거기서 한국 스트리트 패션 1세대들이 모이고, 사진을 올리고, 정보를 나누고, 서로의 스타일을 평가하면서 하나의 문화권이 형성됐다. 이 ‘문화’가 지금의 연매출 1조 원, 거래액 4조 원이 넘는 공룡 플랫폼의 씨앗이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2009년, 무신사는 단순 커뮤니티에서 본격적인 유통 플랫폼으로 몸을 바꾼다.
그때 선택은 매우 명확했다. 백화점에 들어가기 어려웠던 국내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독립 디자이너 브랜드를 한데 모으고, 커뮤니티에서 쌓인 신뢰를 바탕으로 “이 브랜드, 이 코디를 사는” 경험을 열어준 것이다. 10대·20대·30대 초반까지, 트렌드에 민감하고 가성비를 중요하게 여기는 세대에게 무신사는 ‘옷 잘 입는 애들이 쓰는 플랫폼’으로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이미 팬덤이 먼저 형성돼 있었기 때문에, 광고비를 쏟아붓는 대신 커뮤니티와 콘텐츠를 기반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는 점이 이 회사의 1차 성공 포인트다.
지금의 무신사를 숫자로 요약하면 이렇다.
회원 수 1,000만 명 이상, 연간 거래액 4조 원을 넘는 플랫폼. 그런데 더 흥미로운 건 ‘어디서 돈을 버느냐’다. 무신사의 매출 구조는 크게 세 축으로 나뉜다. 첫째, 무신사·29CM에서 발생하는 플랫폼 수수료 매출(연환산 약 5,000억 원). 둘째, 자체 브랜드 무신사 스탠더드(Musinsa Standard) 제품 매출(약 3,914억 원). 셋째, 자회사 무신사 트레이딩(Musinsa Trading)을 통한 상품 수입 및 유통 매출(약 4,000억 원). 과거에는 상품(40%)·제품(20%)·수수료(40%)였다면, 2025년 반기에는 상품(30%)·제품(30%)·수수료(40%)로 바뀌며 거의 4:3:3에 가까운 포트폴리오를 만들어냈다. 어느 한 축에 과도하게 의존하지 않는 구조, 이것이 ‘1세대 이커머스’와 다른 무신사의 지금이다.
플랫폼 수수료 매출은 무신사의 가장 기본적인 캐시카우다.
입점 브랜드들의 판매를 중개하면서 수수료를 받는 구조인데, 여기엔 29CM 인수가 크게 기여했다. 29CM는 감도 높은 큐레이션과 에디토리얼로 유명한 플랫폼이다. 무신사가 대중적 스트리트·캐주얼을 담당한다면, 29CM는 라이프스타일·프리미엄 취향을 담당한다. 같은 패션이지만 ‘결이 다른 두 플랫폼’을 한 지붕 아래 묶으면서, 무신사는 Z세대부터 밀레니얼, 30대 후반 이상까지 스펙트럼을 넓혔다. 단순히 거래액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고객의 라이프사이클 전체를 커버하는 그림이 되기 시작했다.
두 번째 축은 무신사 스탠더드다.
이 브랜드는 무신사의 전략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플랫폼에서 축적한 데이터와 트렌드 감각을 바탕으로, “많이 찾지만 항상 아쉬웠던 기본템”에 정면으로 투자했다. 그 결과 대표 상품인 슬랙스는 6년 동안 누적 550만 장 이상 팔렸고, 2021년 대비 약 450% 매출 성장이라는 숫자를 만든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무신사 스탠더드는 온라인에서 만든 인기를 오프라인으로 가져온다. 불과 2년 만에 매장 수를 30개까지 늘리며, 유니클로(130개)·자라(30개)와 비교 가능한 ‘전국 단위 체인’의 궤도에 진입했다.
이 오프라인 확장은 단순한 매장 늘리기가 아니다. 하나의 메시지다. “우리는 더 이상 온라인 플랫폼이 아니라, 일상 속 브랜드 경험을 설계하는 회사다.” 성수, 홍대, 강남, 명동 등 핵심 상권에 무신사 스탠더드 매장을 심고, 피팅 경험을 강화함으로써 온라인에서 쌓인 구매 데이터와 오프라인 체험을 연결한다. 사이즈에 대한 불안, 소재에 대한 의심, 사진과 실물의 괴리 같은 이커머스의 구조적 약점을 오프라인에서 보완하는 전략이다. 동시에 “기본템=무신사 스탠더드”라는 공식을 머릿속에 박아 넣는 브랜딩 효과도 얻는다.
흥미로운 점은 타깃 확장 방식이다.
무신사의 초기 핵심은 10·20대 남성, 스트리트·스니커즈·캐주얼에 열광하는 층이었다. 하지만 무신사 스탠더드는 추성훈, 노홍철 등을 기용한 캠페인으로 40~50대 남성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다. 이들은 스트릿 패션 팬이 아닐 수 있지만, ‘깔끔한 기본템’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결국 무신사는 커뮤니티 기반의 마니아 브랜드에서, 세대 전반을 아우르는 데일리웨어 브랜드로 자신을 재정의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의 유니클로를 노린다는 표현이 과장이 아니다.
여기에 외국인 특화 전략이 더해지면서 오프라인은 또 다른 의미를 갖기 시작한다.
명동, 홍대, 강남, 성수처럼 외국인 유동이 많은 상권의 매장은 사실상 ‘K-패션 쇼룸’ 역할을 한다. 환전·즉시 환급 서비스, 다국어 안내, 여행자 관점 동선 설계 등은 전형적인 관광 상권 대응이지만, 그 효과는 단순 매출을 넘어선다. 한국에 온 관광객들이 “올리브영·다이소·무신사 스탠더드는 꼭 간다”며 ‘올다무(올리브영, 다이소, 무신사 스탠더드)’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무신사는 이미 K-패션의 필수 방문 코스로 들어가고 있다. 이는 장기적으로 무신사의 글로벌 인지도와 해외 진출의 디딤돌이 된다. 한국에서 체험한 브랜드를, 나중에 자기 나라에서 온라인으로 다시 구매하는 구조를 생각해 보면 더욱 그렇다.
마지막 축인 무신사 트레이딩은 눈에 잘 띄지 않지만, 무신사의 비즈니스를 수평적으로 확장하는 날개다.
해외 브랜드의 국내 독점 유통 판권을 확보하고, 수입과 판매를 동시에 담당하는 구조다. 단순한 ‘입점’이 아니라, 국내 시장 진입의 파트너가 되는 것이다. 이는 두 가지 효과를 낳는다. 첫째, 플랫폼에 입점된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강화해 고객에게 더 넓은 선택지를 제공한다. 둘째, 마진 구조를 개선한다. 단순 중개가 아니라 수입·재판매를 통해 보다 높은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리해 보면, 무신사의 성장은 한 줄로 요약되지 않는다.
커뮤니티에서 시작한 팬덤, 플랫폼 수수료로 대표되는 디지털 비즈니스, 무신사 스탠더드를 중심으로 한 자체 브랜드와 오프라인 확장, 그리고 무신사 트레이딩과 29CM가 만드는 포트폴리오 다각화까지. 이 세 가지 축이 4:3:3의 매출 구조로 맞물리면서, 무신사는 “온라인 패션 플랫폼”이라는 말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기업이 되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한 방’이 아니라 여러 축이 동시에 성장하는 구조가 리스크를 낮추는 강점이기도 하다.
앞으로 남은 질문은 이런 것이다.
무신사가 지금의 4:3:3 구조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글로벌·리셀·브랜드 인큐베이팅 등 새로운 성장 축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추가할 수 있을까. 그리고 ‘한국의 유니클로’라는 표현을 넘어, 진짜로 아시아에서 통하는 패션 인프라 기업이 될 수 있을까. 그 답은 숫자만이 아니라, 커뮤니티에서 시작한 그 특유의 감도와 실행력 위에서 계속 써 내려가게 될 것이다.
투자분석가 칼럼니스트 yoian@kaka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