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증한 전력 수요에 미국·빅테크·글로벌 산업이 원자력으로 돌아섰다.
생성형 AI가 이끄는 데이터센터 확장 경쟁이 미국 전력 수급 체계를 뿌리부터 흔들면서, 수십 년간 뒷전으로 밀렸던 원자력이 다시 국가 에너지 전략의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AI 인프라 확장은 더 이상 ICT 산업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에너지 정책과 산업 경쟁력의 우선순위를 재편하는 거대한 변곡점으로 자리 잡았다.
AI 확산이 만든 초유의 전력 폭증… 미국 전력수요 곡선이 20년 만에 뒤집혔다
생성형 AI 도입이 가속화되면서 데이터센터의 전력 사용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딜로이트는 미국 내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2035년까지 약 5배 증가한 176GW 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단일 산업군이 국가 전력수요 구조를 이 정도 규모로 바꾼 첫 사례로, AI가 전력 인프라 설계의 전면적인 재검토를 촉발하고 있다.
특히 LLM 훈련과 초대형 GPU 클러스터 가동은 기존 클라우드 대비 전력 집약도가 극적으로 높아, 재생에너지 중심의 기존 정책만으로는 장기적 수요 대응이 불가능한 상황을 만들고 있다.
24시간 끊김 없는 전력… AI 데이터센터가 원자력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
원자력은 날씨, 계절, 일조량에 영향을 받지 않고 연중무휴로 전력 공급이 가능한 유일한 청정에너지로 평가된다. 2024년 기준 원전의 설비 이용률은 92.5%로, 풍력(35%), 태양광(25%)을 크게 웃돈다. AI 서비스 운영은 한순간의 정전도 치명적 손실로 이어지는 만큼, 안정적 전력 공급이 가능한 원전은 데이터센터의 요구 조건에 정확히 부합한다.
또한 단일 원자로가 800MW 이상을 생산할 수 있어, 대형 AI 메가캠퍼스의 전력 수요를 단독으로 감당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전력원이다. 탄소 배출이 사실상 없다는 점은 글로벌 기업들의 RE100·ESG 전략과도 충돌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AI 시대의 에너지 전략을 두고 “결국 원전이 돌아오는 구조적 귀환”이라고 분석한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원전 르네상스’ 전면 선언… 국가 전략으로 승격된 원자력
2025년 1월 출범한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의 원전 산업을 ‘국가 에너지 안보와 AI 인프라 경쟁력의 핵심 축’으로 재정의한 ‘American Nuclear Renaissance Initiative’ 를 발표할 정도로 원전에 과감히 정책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주요 내용은 ▲SMR·마이크로리액터 규제 완화 및 상용화 촉진 ▲기존 원전의 디지털 업그레이드에 20억 달러 투자 ▲세제 인센티브 확대 및 인허가 절차 단축 ▲원자력을 AI 인프라 산업의 공식 청정전력으로 지정이다.
이어 2025년 4월,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는 SMR 건설 인허가 절차를 대폭 간소화하면서, 미국의 원전 경쟁력 회복 전략이 정책과 규제·예산 전반에 걸쳐 본격 가동되기 시작했다.
빅테크마저 원전 확보 경쟁… 구글과 메타는 왜 원전을 샀나
가장 빠르게 움직인 것은 오히려 에너지 기업이 아니라 빅테크 기업들이다.
AI 모델을 운영하는 기업에게 전력은 ‘원가’가 아니라 ‘성장 속도를 좌우하는 물류 인프라’에 가깝다.
▲메타(Meta): 2025년 6월, 일리노이 원전과 20년 장기 전력 구매계약(PPA) 체결
▲구글(Google): 2025년 8월, 데이터센터 전력 확보를 위한 SMR 기반 전력 공급 계약 발표
빅테크의 선택은 두 가지 현실을 보여준다.
재생에너지만으로는 AI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점과 원자력이야말로 AI 산업이 요구하는 고품질·고안정성 전력의 유일한 대안이라는 점이다.
이 흐름은 AI 시대 전력 시장이 ‘빅테크 주도 원전 확보 경쟁’이라는 새로운 게임 단계에 진입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원전 확대의 장애물...높은 건설비·공기 지연·폐기물·핵연료 공급망
미국의 원전 부활 드라이브에도 해결해야 할 구조적 난관은 여전히 크다.
첫째, 막대한 건설 비용이다. 원전 건설 단가는 kW당 6,417~12,681달러로, 천연가스 발전소(1,290달러) 대비 최대 10배 차이가 난다.
둘째, 공기 지연 문제는 지속적이다. 최근 준공된 일부 프로젝트는 비용이 114% 초과, 공정이 6년 지연되며 경제성 논란을 일으켰다.
셋째, 폐기물 관리 체계 부재도 걸림돌이다. SMR 확산으로 폐기물 특성이 다양해지면서 기존 처분 체계로는 대응이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넷째, 우라늄 농축 공급망의 해외 의존도는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 미국의 가장 약한 고리다.
이에 따라 원전 확대는 AI 시대의 필수 인프라이면서도, 동시에 복잡한 정책·기술 과제를 포함한 장기 전략임이 분명해지고 있다.
한미 원전 동맹, 글로벌 시장 주도권을 향한 새로운 전략 축으로 부상
AI 시대의 원전 르네상스는 한국에도 중요한 전략적 기회를 제공한다.
한국은 APR1400 상용화, UAE 바라카 프로젝트 성공 등으로 EPC·설계·품질관리 역량을 세계적으로 입증한 몇 안 되는 국가다. 반면 미국은 금융·외교·국제 규제 영향력을 보유한 원전 기술 원조국이다.
양국의 역량이 결합할 경우 ▲제3국 원전 수주 경쟁력 강화 ▲글로벌 공급망 주도권 확보 ▲SMR·핵연료 생태계 확대 ▲에너지 안보와 디지털 인프라 협력 확대가 가능하다.
특히 폴란드, 체코, 루마니아 등 동유럽과 중동·동남아시아는 원전 도입 수요가 급증하는 지역으로, ‘한미 공동 진출 모델’은 이미 차세대 에너지·인프라 협력의 핵심 축으로 부각되고 있다.
AI가 원전을 다시 호출했다… 기술과 에너지의 동맹이 시작됐다
AI 데이터센터의 폭발적 성장은 전력 분야의 게임 규칙을 완전히 바꿨다.
재생에너지 중심 전략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전력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미국과 글로벌 기업들은 다시 원자력으로 돌아서고 있다. AI 인프라의 확장은 결국 “AI → 전력 수요 폭발 → 원전 부활” 로 이어지는 거대한 구조적 변화를 만들고 있다.
AI는 지금 전 세계 에너지 전략을 다시 쓰고 있다. 그리고 그 새로운 전략의 중심에는 다시 원자력이 자리 잡고 있다.
테크인싸 칼럼니스트 tlswnqo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