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 없이는 AI도 없다"
미국·중국의 데이터센터 경쟁이 보여주는 냉정한 현실

미국과 중국이 AI 전쟁을 벌이는 무대 뒤에는, ‘전력’이라는 숨은 승부처가 있다. 인공지능은 이제 알고리즘보다 전기를 얼마나 안정적으로, 싸게, 오래 공급받을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탈원전의 틀 안에서 ‘친환경 전환’에 머물러 있다. AI 강국으로 가겠다는 포부는 거창하지만, 전력을 어떻게 확보할지에 대한 청사진은 없다.

전기 먹는 하마인 AI 데이터 센터.  이미지=챗GPT 생성
전기 먹는 하마인 AI 데이터 센터.  이미지=챗GPT 생성

미국의 데이터센터는 이미 ‘소형 도시’ 수준의 전력을 쓴다

AI 열풍이 본격화된 이후, 미국의 데이터센터는 산업단지 전체 규모의 전력을 소비하기 시작했다.

“예컨대 미국에서는 2025년 기준으로 데이터센터 수요가 전기 소비 증가의 핵심 동력이 되고 있다. U.S. Energy Information Administration(EIA)는 2024년 약 4,097 억 kWh였던 연간 전력판매량이 2025년에는 약 4,193 억 kWh로, 2026년엔 4,283 억 kWh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이 증가분 상당수가 AI 데이터센터 수요 때문이다.

더욱이 테네시주 멤피스에 위치한 xAI 데이터센터 인근 지역에서는 전력 공급 부족으로 인해 추가 가스 터빈을 급히 들여와야 했고, 이로 인해 지역의 전기망과 수도 인프라가 제한적 여건에 놓였다는 보도도 있었다. 

이처럼 AI 모델 하나의 학습량이 도시 하나의 전력 사용량과 맞먹는 시대가 도래했다. 엔비디아의 블랙웰 GPU 1장만 해도 TDP(열설계전력)가 700와트에 달한다. 데이터센터 한 랙에 GPU 72장을 탑재하는 ‘NVL72’ 구성이 늘어나면서, 한 랙만으로도 50kW 이상을 소비한다. 수천 개 랙이 돌아가는 AI 팜의 규모를 생각하면, 단일 모델을 훈련시키는 데 필요한 전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AI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기술의 절대적인 차이를 값 싼 전기로 메우고 있는 중국 정부.  이미지=챗GPT 생성
AI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기술의 절대적인 차이를 값 싼 전기로 메우고 있는 중국 정부.  이미지=챗GPT 생성

중국은 ‘전력 무기화’로 AI를 키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은 전력을 전략적으로 무기화했다.

중국의 여러 지방정부는 자국산 AI칩을 사용하는 데이터센터에 전기요금을 최대 50% 인하하는 파격적인 지원책을 내놓고 있다.

구이저우, 간쑤, 내몽골 등 전력 여유 지역은 AI 인프라 거점으로 변모 중이며, 전력비 절감이 곧 경쟁력 확보 수단이 되고 있다.

중국은 효율이 낮은 자국 칩의 단점을 전력 지원으로 보완하고, AI 산업 전체를 ‘국가 단위의 규모의 경제’로 키우고 있다. 이제 전력은 단순한 산업 인프라가 아니라 패권을 좌우하는 전략 자산이 된 것이다.

한국의 현실, 전력 여유 없는 AI 확장

한국은 엔비디아로부터 GPU 26만 장 공급을 확정받으며 AI 인프라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그러나 이 칩을 가동하려면 원전 1기(1GW) 수준의 전력이 추가로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29년까지 요청된 데이터센터 수요만으로도 원전 53기 분량의 전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고리 2호기 계속운전(수명 연장) 허가가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고, 신규 원전은 정치적 논쟁 속에서 표류하고 있다. 탈원전 기조가 남긴 ‘정책 관성’이 여전히 작동 중이다.

GPU는 확보 했지만 전력이 부족한 한국의 현실.  이미지=챗GPT 생성
GPU는 확보 했지만 전력이 부족한 한국의 현실.  이미지=챗GPT 생성

‘친환경’은 필요하지만, AI는 24시간 돌아야 한다

AI 데이터센터는 24시간 중단 없이 가동돼야 한다.

태양광·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는 친환경이지만, 간헐적 특성상 야간·무풍 시엔 전력 공급이 어렵다. 결국, AI 인프라의 핵심은 기저전력 확보다.

이는 단순히 발전소를 많이 짓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AI 시대의 국가 전략은 ‘전력 구조 재설계’에 달려 있다.

불름버그에 따르면 미국은 이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다. 2024년 미 에너지부(DOE)는 “AI 데이터센터 전력소비를 감당하기 위해 차세대 소형모듈원전(SMR)과 수소 터빈 발전을 병행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AI 강국’의 전제는 결국 ‘전력 강국’이다

한국이 AI 패권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다음 세 가지가 시급하다.

▲원전의 전략적 복귀 : 고리 2호기 등 문제 없는 원전을 재가동하고, SMR(소형모듈원전) 실증 사업을 AI 데이터센터 중심으로 설계해야 한다.

▲AI 전력 정책 패키지 설계 : 데이터센터 전용 요금제, 송전망 우선권, 입지 패스트트랙을 포함한 국가 차원의 전력 인프라 계획이 필요하다.

▲효율 향상도 전력으로 간주 : PUE(전력사용효율)를 1.6에서 1.2로 낮추는 것은 발전소 증설에 준하는 효과다. 효율 향상을 ‘전력 확보’로 인식해야 한다. PUE 개선은 눈에 보이지 않는 ‘가상의 발전소’를 만드는 셈이다.

전력 설계 없는 AI는 허상이다

AI는 더 이상 알고리즘의 싸움이 아니다. 그 뒤에는 막대한 전력, 냉각, 인프라 투자가 받쳐주는 물리적 경제가 존재한다.

중국은 전력 보조금으로, 미국은 원전·수소·전력망 확충으로 이 싸움에 뛰어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탈원전의 그림자 속에서 “AI 강국”을 외치는 것은 공허하다.

지금 필요한 건 이념이 아닌 인프라 설계다. AI가 돌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천재 개발자’보다 ‘1기가와트의 전기’다. AI 강국의 전제는 전력 강국이며, 전력 전략이 곧 기술 전략이다.

테크풍운아 칼럼니스트  scienceaza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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