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인프라 확장으로 전력 수요가 폭증하면서 국가 에너지 전략이 다시 원자력 중심으로 회귀하는 가운데, 정부가 고리 2호기의 계속운전을 승인하며 AI 시대의 전력 기반을 원전으로 재정비하는 결정적 전환점을 맞았다.

부산 기장군에 있는 고리 원전 전경.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AI 전력수요 4배 폭증…데이터센터 확장이 원전 재가동을 이끌다

AI 확산 속도가 국가 에너지 정책의 방향을 정면으로 바꾸고 있다. 부산 기장군 고리 2호기가 2년 7개월 만에 ‘계속운전’ 승인을 받으면서, 한국은 사실상 원전 활용을 전제로 한 전력 전략을 공식화했다.

올해 8.2TWh였던 국내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는 2038년 30TWh까지 증가할 전망으로, 약 4배 폭증이다. 이는 AI·클라우드 기업들이 확보해야 하는 GPU·NPU 서버가 급증하는 만큼, 전력 수급을 뒷받침하기 위한 에너지 기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판단이 반영된 결과다.

전력 전문가들은 “1GW급 원전 1기가 실제로 연간 생산하는 전력은 7~8TWh”라며 “데이터센터 증가분만 감당하려면 최소 원전 3기가 더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AI 인프라의 성장은 곧 ‘전력 문제’이며, 전력 수급 안정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AI 강국 전략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의미다.

AI 3대 강국·NDC 달성 목표 속 원전의 전략적 복귀

원안위(원자력안전위원회, NSSC)는 224회 전체회의에서 고리 2호기 계속운전 안건을 표결에 부쳐 찬성 5대 반대 1로 승인했다. 이로써 1983년 상업운전을 시작한 고리 2호기는 2033년 4월까지 수명이 연장됐다.

이번 연장은 단순한 원전 1기의 재가동이 아니라, AI 강국 목표(AX)와 탄소 감축(GX)이라는 두 국정 과제가 맞물려 원자력이 다시 핵심 전력원으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2035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가 ‘2018년 대비 53~61% 감축’으로 확정되면서, 기존 원전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신규 원전을 건설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전문가들은 “현재 원전 가동률을 82%에서 90%대로 끌어올리거나, 신규 원전 건설 없이는 NDC 목표가 불가능하다”고 분석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엔비디아 GPU 26만 개가 한국에 들어온다 해도, 전기가 없다면 데이터센터는 서류만 남는다”며 “AI 산업이 요구하는 전력 규모는 이미 국가 단위 에너지 정책을 바꿀 수준”이라고 말했다.

노후 원전 9기 연장 논의도 가속…전력 인프라 대전환기

고리 2호기 승인으로 고리 3·4호기, 한빛 1·2호기, 한울 1·2호기 등 총 9기의 노후 원전이 연장 심사에 본격적으로 돌입할 전망이다. 이들 10기(고리 2호기 포함)의 발전 용량은 8.45GW로, 국내 전체 원전 용량의 약 3분의 1을 차지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안전성이 확보되면 기존 원전을 계속 활용한다”고 밝힌 만큼, 원전 정책은 이미 안정적 운영을 기조로 재정립된 상태다.

원자력업계는 “이재명 정부가 탈원전 기조로 전환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명확하게 준 셈”이라며 안도감을 나타냈다. 그러나 업계 내부에서는 “지금 속도라면 기존 원전 연장만으로는 AI·반도체·데이터센터의 전력 곡선을 따라잡기 어렵다”며 신규 원전 건설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AI 시대의 전력 방정식…원전 없이는 산업 성장도 없다

AI 데이터센터는 더 이상 선택적인 인프라가 아니라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기반시설로 자리 잡았다.

전력 인프라 확보가 지연되면, 반도체·AI·클라우드 기업의 투자 계획 또한 지연되며 국가 성장률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한국이 AI 3대 강국 전략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기존 원전 재가동을 넘어 대형 원전과 SMR 등 신규 전원 확보까지 이어지는 장기 에너지 전략의 일관성이 요구된다.

고리 2호기 재가동은 이 거대한 전환의 첫 사례일 뿐이다.

AI 인프라의 확장과 탄소중립 목표가 공존하는 시대에, 원전은 다시 한 번 국가 에너지 전략의 중심으로 복귀했다.

신주백 기자  jbshin@kmjourn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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