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겨난 이방인에서 문화의 큐레이터로, 박재범의 리브랜딩 서사
몰입을 만들어내는 서사의 힘을 해부합니다
2008년, ‘10점 만점에 10점’이라는 노래가 등장했다. 지금 시각으로 보면 위험한 가사 말이지만 당대 아이돌들이 유순한 미소년 이미지에 집중하던 시절, 2PM은 무대에서 몸을 던지고, 바지를 찢고, 바닥을 기는 퍼포먼스로 짐승돌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그 한가운데 리더 박재범이 있었다. 이질적이었다. 시애틀 출신, 화려한 춤 실력, 눈빛은 늘 도전적이었고 표정은 ‘나 이런 거 처음 아니라니까?’ 하는 여유가 있었다. 미국에서 자란 이민 2세가 서울 한복판에서 K팝의 중심에 섰다. 그는 중심에 있었지만, 여전히 ‘외부인’의 태도를 잃지 않았다.
사진=살롱드립 유튜브
하지만 그 중심은 오래가지 못했다. 연습생 시절 마이스페이스(SNS)에 남겼던 글이 발굴됐다. “Korea is gay”, “I hate Koreans” 같은 표현은 10대의 감정 배설이었고, 영어권 청소년 특유의 속어였지만, 한국 대중에겐 문화모욕으로 읽혔다. 맥락은 삭제되고 단어만 남았다. 박재범은 사과했고, 소속사는 자숙을 권했고, 그는 2PM을 떠났다. 공식 입장은 “자진 탈퇴”, 하지만 대중은 알았다. 이건 ‘퇴출’이라는 걸. 그렇게 그는 고국이자 타향이었던 한국을 떠나, 다시 시애틀로 돌아갔다. (10대시절의 사담을 갖고 이렇게 낙인찍기를 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는 논란이 있을 수 있겠다)
그 뒤 2PM은 6인 체제로 정상의 길을 걸었고, 박재범은 사라졌다. 아니, 정확히는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가 왜 탈퇴했는지, JYP와의 계약 해지는 왜 이루어졌는지, 누구도 명확히 말하지 않았다. 마치 스타 시스템의 바깥으로 밀려난 잊혀진 변수처럼. 하지만 박재범은 사라질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보이지 않을 뿐,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2010년경부터 그는 유튜브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고, 국내가 아닌 해외 커뮤니티와 힙합 씬에서 자신만의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다 2013년, 그 유명한 SNL 코리아 출연. 이건 그가 다시 ‘나 여기 있어’라고 말하는 방식이었다. 그 무대는 무겁지 않았고, 고개 숙이지도 않았다. 정장을 찢고, 얼굴을 망가뜨리고, 몸을 던졌다. 아이돌 박재범이었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동작들로 그는 웃기면서도 섹시했고, 가볍지만 묵직했다.
왜 하필 SNL이었을까? 공중파는 그를 불러주지 않았다. 토크쇼는 진지하게 사과하라고 했을 것이다. 무대는 그를 아직 위험하다고 여겼다. 그래서 그는 무대를 만들었다. 코미디라는 장르로, 예능이라는 위장막을 두르고, 진심을 보여주는 무대.
그 순간 대중은 웃으면서도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을 것이다. ‘어? 얘 여전히 멋있는데?’ ‘아니, 오히려 지금이 더 멋진데?’ 그의 복귀는, 누군가에게는 ‘쟤 아직도 살아 있네?’였고 누군가에게는 ‘쟤가 다시 돌아왔어!’였다. 하지만 박재범 자신에게는 명백했다. ‘나는 한 번도 끝난 적 없어.’
그 뒤의 이야기는 많이 알려져 있다. AOMG를 만들고, H1GHR MUSIC으로 해외까지 뻗었으며, 힙합 씬의 수많은 스타들을 발굴하고 키웠다. 심지어 대한민국 힙합 레이블 시스템의 중심까지 갔다. 그러고는 다시 내려놨다. 술 브랜드 ‘원소주’를 만들고, 스트리트 패션과 댄스 크루를 이끄는 라이프스타일 큐레이터가 되었다.
그는 무대를 떠난 게 아니라, 삶 자체를 무대로 만들었다. 쫓겨났던 외부인이, 이제는 판을 짜는 제작자가 된 것이다. 이방인의 귀환. 하지만 그 귀환은 왕좌가 아니라, 자유를 향한 것이었다.
그를 문학적으로 비유하자면, 그는 오디세우스다. 배를 타고 떠나온 자.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했지만, 결국 돌아와 자신의 방식으로 왕국을 다시 세운 인물. 단, 그가 세운 왕국은 콘서트장이 아니라 스튜디오와 바(bar), 커뮤니티와 브랜드 안에 있다. 그는 단지 돌아온 것이 아니라, 재정의된 자신으로 복귀한 사람이다.
박재범의 강점은 분명하다. 자기 자신을 연출하는 사람. 시스템이 거부해도, 대중이 망설여도, 그는 스스로 새로운 서사를 만들고, 그 안에서 살아 움직이며 춤을 춘다. 대중이 그를 사랑하는 건, 그의 음악 때문만은 아니다. 그가 ‘나는 이렇게 산다’고 말할 때, 우리는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에게 김수영 시인의 '풀'을 들려주고 싶다 .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 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