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러티브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플레이브 PLAVE

몰입을 만들어내는 서사의 힘을 해부합니다

1998년, 아담이라는 사이버 가수가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CG가수? 저게 무대에 서는 거야?’ 물론 지금 보면 약간 조악한 3D 모델이지만, 당시에는 그 자체로 기술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아담은 사람처럼 인터뷰하지 않았고, 팬과 소통하지 않았다. 그는 ‘음악이 좋으면 되는 것 아닌가’라는 자신감으로 만들어졌다. 실제로 곡은 좋았다. 작곡가 이경섭이 만든 ‘세상엔 없는 사랑’은 지금 들어도 세련되다. 그런데 팬은 남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담은 ‘음악만 있는 존재’였고, 감정이 없었다. 노래는 들었지만, 누구의 목소리인지 몰랐고, 그 목소리가 나를 위해 존재하는지 알 수 없었다.

PLAVE 하민 · 밤비 · 은호 · 예준 · 노아 / 사진=VLAST
PLAVE 하민 · 밤비 · 은호 · 예준 · 노아 / 사진=VLAST

2023년, 플레이브(PLAVE)가 등장했다. 이들은  버추얼 아이돌이다. 그러나 아담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다. 가장 큰 차이는 기술의 목적이다. 아담은 ‘보여주기 위한 기술’이었다면, 플레이브는 ‘소통을 위한 기술’이다. 무엇보다 플레이브는 2D 애니메이션 기반이다. 3D 캐릭터처럼 무겁지 않아서, 제작 속도가 빠르고, 감정 표현도 훨씬 더 유연하다. 즉, 진짜처럼 보이기보다는, 진짜처럼 느껴지게 하는 데 집중한 것이다. 일종의 ‘카툰형 아이돌’이다. 이는 단순한 시각 스타일이 아니라, 감정 전략이다. 덜 리얼하고, 더 빠르고, 더 말이 많다. 마치 웹툰 캐릭터가 노래하고, 팬과 라이브를 한다.

이 구조는 K팝 아이돌의 핵심 문법, 즉 ‘팬과 감정을 주고받으며 쌓이는 관계성’을 훨씬 더 효율적으로 구현한다. 사람들은 그걸 알고 있다. 플레이브 그림 뒤에 진짜 가수가 있다는 걸. 그런데도 좋아한다. 오히려 진짜 가짜의 구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프론트와 백엔드의 결합이 아티스트 퍼포먼스라는 걸 아니까, 부담 없이 감정을 주고, 웃고, 응원하고, 위로받는다. 덜 무겁고, 덜 복잡하고, 그래서 더 정직하게 몰입할 수 있다.

잠시 뒤를 돌아보면, 플레이브의 감정 전략은 펭수와도 닮아 있다. 펭수는 자신을 펭귄이라 우긴다. 실제로는 연기자가 있지만, 공식적으로는 없다. 일종의 세계관 놀이다. 그 안에 사람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팬들은 묻지 않는다. 왜냐하면, 펭수가 하는 말이 진심 같기 때문이다. “어른이 되면 다 잘 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더라.” 이 한마디에 수많은 어른들이 울었다. 펭수는 사회적 분장 속에서도, 인간의 감정을 가장 명확히 전달한 가짜였다. 숨긴 건 정체지만, 드러낸 건 진심이었다.

플레이브(PLAVE)와 비슷한 시기에 등장했던 메이브(MAVE:)는 완전히 다른 접근이었다. 3D 기반, AI 목소리, 정교한 세계관,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시각적 정합성. 퍼포먼스는 완벽했고, 음원도 좋았다. 그런데 감정은 없었다. 이유는 단순하다. 팬들은 “이 감정은 누구에게서 왔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런데 메이브는 그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AI가 만든 목소리, 시스템이 설계한 반응. 아무도 거기 없었다. 사람들은 그 사실을 단박에 알아챘다. 아무리 멋있어도, 감정의 회로가 닫혀 있으면 덕질은 시작되지 않는다.

반면 플레이브는 뒤에 사람이 있다. 그들은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 하지만 그 감정은 살아 있다. 라이브 방송에서, 대답의 타이밍에서, 말끝에 머뭇거리는 순간에서, 팬들은 느낀다. 아, 이건 누군가가 직접 말하고 있구나. 팬들은 캐릭터를 좋아하지만, 그 안에 있는 사람의 감정까지도 함께 좋아한다. 그게 플레이브가 ‘가짜인데 진짜 같다’는 말을 듣는 이유다.

감정은 정확하게 작동한다. 완벽함이 아니라 여백에서. 팬들이 몰입하는 건, 비주얼이 정교해서가 아니라, 내 감정을 받아줄 리듬이 있기 때문이다. 플레이브는 그 리듬을 열어뒀다. 빠르게 반응하고, 유연하게 대화하며, 진심 같은 대사를 건넨다. 때로는 어색하고, 때로는 튀어나온 감정이 이상하게 생생하다. 그러니까 가짜인데도, 마음이 간다.

결국 우리는 기술의 진화를 보고 있는 게 아니다. 감정의 구조가 바뀌는 걸 보고 있다. 과거엔 존재가 감정을 만들었다. 이제는 감정이 존재를 증명한다. 팬이 좋아하면, 그건 진짜다. 그것이 사람인지, 캐릭터인지, AI인지 따지기보다, 나의 감정이 닿았느냐가 더 중요한 시대. 플레이브는 그 정서적 전환의 선두에 있다. 그리고 우리는 알고 있다. 이게 진짜든 아니든, 사랑받을 준비가 된 존재는, 결국 사랑받게 되어 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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