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을 건너는 낙타에게도 박수를” – 성장의 곡선은 하나가 아니다

 

이미지=ImageFX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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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자라면 한 번쯤은 이 문장을 스스로에게 속삭여봤을 것이다.

나는 빠르게 타올라야 한다.

하강은 잠깐, 반등은 폭발적으로. 숫자는 꺾여야 하고, 곡선은 치솟아야 한다. 그래야 투자자가 미소 짓고, 언론이 조명하고, 팀원도 희망을 품는다. J커브는 단순한 경제 지표가 아니라, 이 시대 스타트업의 내면에 각인된 서사 구조다.

나 역시 그 질문을 수도 없이 받았고, 때론 그 기대에 맞추기 위해 서둘렀다. 브랜드 정체성에 대한 확신이 부족한 상태에서  과도한 캠페인을 벌였고, 팀이 준비되지 않았는데도 인력을 빠르게 늘렸다. 정작 어렵게 데려온 고객은 허술한 그물망에서 벗어나 얼마 남지 않았다. 돌아보면 그것은 ‘성장’이라기보다 숫자를 위한 질주에 가까웠다.

그 곡선을 그리지 못하면 마치 실패한 것처럼 느껴지고, 그 곡선에 올라타지 못하면 도태되는 것 같은 공포가 따라온다. 하지만 그 곡선, 정말 모두에게 필요한 걸까? 당신이 디스럽터가 아니라면, 오프라인을 해체하는 라이프스타일 혁신자가 아니라면, 왜 모두가 그렇게 빠르게 타올라야만 하는가? 현실의 많은 창업자들은 J커브가 아닌 낙타등 곡선 위를 걷고 있다. 느리지만 단단하게, 흔들리지만 무너지지 않게. 이들은 뛸 수 없지만, 사막을 끝까지 건넌다. 그리고 그 발자국은 조용히 하나의 길이 된다.

J커브는 분명 강렬한 이야기다. 하강 → 반전 → 상승이라는 구조는 관객을 끌어들이기에 완벽하다. 특히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만들고, 오프라인 질서를 해체하는 디스럽터형 스타트업에게는 효과적이다.  카카오,배달의민족, 토스. 이들은 본질적으로 ‘행동 양식’을 바꾸는 비즈니스였고, 그 변화는 어느 순간 급격히 퍼지며 폭발한다. 이런 경우엔 J커브가 맞다. 시장도 갑자기 깨어나고, 수요도 단숨에 이동한다. 하지만 모든 스타트업이 그런 곡선을 그릴 수 있을까?

현실은 낙타등 – 일정한 성장, 반복되는 조정기

대다수의 창업은 그렇게 폭발적이지 않다. 유행을 선도하기보다는, 묵묵히 문제를 해결하고, 충성도 높은 고객층을 조금씩 넓혀간다. 제품을 개선하고, 고객 피드백을 반영하며, 팀 내 갈등을 봉합하면서 나아간다. 이 곡선은 마치 낙타의 등처럼 기복이 있지만,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상승 – 안정 – 조정 – 다시 상승이라는 리듬을 가진다.

낙타등 곡선의 미덕은 지속 가능성이다. 단기간에 수치를 폭발시키는 대신, 조직 문화와 고객 경험을 견고하게 다진다. 성장을 위한 희생이 아니라, 성장하면서도 지켜야 할 것을 잃지 않는 방식. 특히 기술력이 아닌 서비스 경험이 중심이 되는 경우, 또는 오프라인 기반의 로컬 비즈니스라면 이 곡선은 더욱 유효하다. 게다가 낙타형 성장은 외부 환경 변화에 더 유연하다. 시장이 불황일 때, 갑작스러운 규제나 트렌드 변화에도 낙타는 뛸 수 없지만,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시대엔 안정적이고 탄력적인 조직이 살아남는다.

당신의 비즈니스는 어떤 곡선 위에 있는가?

진짜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의 제품은 지금 사람들의 삶의 무엇을 바꾸고 있는가?” 만약 그것이 일상의 구조를 해체하고, 새로운 소비 방식을 창조하고 있다면 J커브는 분명 당신의 운명일 수 있다. 하지만 당신이 해결하는 문제가 작지만 지속적이고, 수요가 점진적으로 늘어나며, 고객이 한 번 쓰면 계속 찾게 되는 구조라면 — 낙타등 곡선이야말로 가장 현실적이고, 깊이 있는 서사다.

스타트업의 서사는 이제 속도전이 아니라 곡선의 자각으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는 모두 같은 그래프를 그릴 필요가 없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문제에 맞는 성장 전략을 선택하고, 그 길을 걸어갈 수 있는 내면의 확신이다. 한 번에 멋지게 성공하는 인생도 아름답지만, 느리더라도 꾸준히 성장하는 인생 또한 충분히 박수받아야 한다.

버티는 것. 그리고 한걸음씩 걸어가는 것.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다. 오늘도 고난하지만 전진을 포기하지 않고 있는 수많은 스타트업들을 응원하며.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 나오는 대사를  전하고 싶다.

몸 고되면 맘이 엄살 못해.
살다가, 살다가 똑 죽겠는 날이 오거든.
가만 누워있지 말고, 죽어라 발버둥을 쳐.
이불이라도 꺼내다 밟어.
밭 갈아 엎고 품이라도 팔러 나가.
'난 안죽어. 죽어도 살고야 만다.
' 죽어라 팔다리를 흔들면
검은바다 다 지나고
반드시 하늘 보여. 
반드시 숨통 트여.

- 폭싹 속았수다 6화 '살민 살아진다' 중

신승호

 코리아 메타버스 저널 발행인

전 와디즈 CMO로서 크라우드 펀딩과 스타트업 투자 문화를 대중화시켰으며, 쏘카 CMO로 근무하며 모빌리티 시장에서 브랜드 인지도를 확장했다. Daum 브랜드 마케팅 총괄, Mnet 편성PD로 콘텐츠 마케팅, 채널 아이덴티티티 전략 등 브랜드 정체성과 시장 포지셔닝을 강화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또한 애니메이션 로보카폴리 뉴미디어/커머스 사업총괄, 이머시브 테크기업 올림플래닛의 사업/마케팅을 총괄한 바 있다. 현재 코리아메타버스저널의 발행인으로 메타버스, AI, XR 등 새로운 기술과 미디어 비즈니스의 접점을 연구하고 있으며, AI 시대의 스마트워크와 내러티브를 탐구하는 칼럼을 연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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