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연결했지만 모두를 갈라놓은, 유튜브의 서사
2005년 4월 23일, 한 남자가 동물원에서 찍은 18초짜리 짧은 영상을 세상에 올렸다.
'Me at the zoo'라는 제목의 이 영상은 별다른 사건도 감정도 없었다. 그러나 그 순간, 세상은 조용히 균열을 일으켰다.
2025년, 유튜브는 20주년을 맞았다. 단순한 동영상 플랫폼이었던 유튜브는 이제 하나의 문명 인프라가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그 위에서 흔들리고 있다.
극단화의 내러티브 – 알고리즘이 인간을 비추는 거울
유튜브는 세상의 모든 동영상을 모으겠다는 순수한 꿈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꿈은 변질되었다. 추천 알고리즘은 인간의 본능을 정밀하게 겨냥했다. 더 자극적인 것, 더 격렬한 것, 더 극단적인 것을 클릭하게 만들었다. 분노와 공포, 혐오와 음모는 더욱 강한 체류 시간을 끌어냈고, 알고리즘은 그것을 보상했다. 그 결과, 유튜브는 원치 않게 극단적 편향을 증폭시키는 엔진이 되었다. 사람들은 점점 자신과 비슷한 생각에만 노출되었고, 사회는 더 깊이 갈라졌다. 유튜브는 인간 심리의 어두운 부분을 비추는 거대한 거울이 되어버렸다.
민주화의 내러티브 – 누구나 세상을 비출 수 있게 되다
그러나 동시에, 유튜브는 권력의 해체를 이루어냈다. 과거, 대중 앞에 서려면 방송국, 출판사, 영화사 같은 거대한 문지기를 통과해야 했다. 이제는 누구나 카메라만 있으면 자신의 목소리를 세상에 띄울 수 있다. 중학생, 농부, 은퇴자, 이주노동자. 유튜브는 모두에게 발언권을 열어주었다.‘구독자 수’는 개인이 쌓은 신뢰의 증거가 되었고, ‘조회수’는 그 사람의 존재를 세상이 증명하는 방식이 되었다. 콘텐츠 민주화는 소수 엘리트가 아닌 다수의 꿈을 발화시키는 공간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작은 이야기들도 세계를 울릴 수 있다는 가능성이 처음으로 열렸다.
바벨탑의 재구성 – 언어 장벽을 허문 자동번역의 힘
유튜브는 단순히 영상을 공유하는 공간에 그치지 않았다. AI 기술의 발전과 함께, 자동 자막 생성과 실시간 번역, 다국어 오디오 더빙이 등장했다. 이제 우리는 한국에서 만든 영상도 브라질 시청자가 포르투갈어로 감상할 수 있고, 일본의 뮤직비디오를 프랑스어로 부를 수 있다. 고대 바벨탑 신화는 인간이 하나의 언어로 하늘에 닿으려다 신의 분노로 언어가 갈라진 이야기였다. 하지만 유튜브는 다른 방식으로 그 신화를 다시 쓰고 있다. 각자의 언어를 지닌 인간들이, 기술의 힘으로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한 세계. 우리는 지금, 다시 바벨탑을 쌓고 있다. 이번에는 하늘에 도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서.
그렇다면, 이 거대한 탑은 무너지지 않을까
지금은 너무 커 보이지만, 영원한 플랫폼은 없다. 유튜브도 예외는 아니다. 만약 유튜브가 무너진다면, 그 붕괴는 서서히, 그러나 명확한 이유를 따라 진행될 것이다.
첫째, 신뢰 붕괴 – ‘진짜’를 찾지 못하는 플랫폼. 허위정보, 조작된 콘텐츠, 조작된 리뷰가 넘쳐나면서 “여기 있는 건 믿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커진다면, 유튜브는 기반을 잃는다. 플랫폼은 재미로 버틸 수는 있지만, 신뢰를 잃으면 무너진다. 신뢰를 잃은 유튜브는 곧 존재 이유를 잃는 것과 같다.
둘째, 창작자 생태계 붕괴 – ‘돈이 안 되면’ 떠난다. 크리에이터 이코노미를 겨냥하는 타플랫폼, 예를 들어 틱톡, 쇼피파이,넷플릭스 등이 시간을 점유하기 시작하면 광고 수익이 줄어들 것이고, 대형 창작자 위주로 편중된다면 ‘생계형 크리에이터’들이 하나둘 떠날 것이다. 창작자가 떠나면, 소비자도 떠난다. 콘텐츠는 무한할 수 있어도,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다.
셋째, 알고리즘 피로 – 사람을 질리게 만든다. 지나친 개인화, 반복되는 유형, 과도한 광고. 알고리즘이 주는 중독성은 결국 피로감을 낳는다. 한 번 질리면, 사용자는 돌아오지 않는다. (과거 페이스북이 겪었던 몰락과 똑같은 패턴이다.)
넷째, 규제 리스크 – 법과 제도가 덮칠 때. 각국 정부는 이미 유튜브를 주시하고 있다. 허위정보, 아동 보호, 정치적 공정성, 데이터 문제.딥페이크 등 강력한 규제가 시작되면, 플랫폼은 필연적으로 경직된다. 사용자는 더 자유로운 대안을 찾아 떠날 수 있다.
다섯째, 기술 전환 실패 – 다음 세대 미디어를 놓친다면. 미래는 XR(확장현실), AI 생성 콘텐츠, 인터랙티브 미디어로 넘어가고 있다. 유튜브가 이 전환에 뒤처진다면, ‘2D 영상 플랫폼’으로 박제될 수 있다. 특히 젊은 세대는 새로움을 찾아 빠르게 이동한다. 새로운 문법을 놓치는 순간, 플랫폼은 급격히 늙는다.
그리고 누군가는 묻는다. 지금 유튜브 시작해도 늦지 않았냐고.
물론 늦었다. 그런데 다 늦었으니까 괜찮다. 심지어 10년 전에 시작한 사람들도 지금 알고리즘 앞에서는 매일 생존 싸움을 벌인다. 이제 유튜브는 ‘빨리 시작했냐’의 게임이 아니다. “얼마나 꾸역꾸역 오래 버티냐”의 게임이다. 하루에 500시간씩 영상이 쏟아진다. 당신이 영상을 하나 올리는 동안에도, 다른 사람들은 이미 10,000개를 올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안 하면 10년 후에도 똑같은 질문을 할 것이다. “지금 시작해도 늦지 않았을까요?” 그때도 답은 똑같을 거다. “네, 늦었어요. 그러니까 얼른 시작하세요.”
유튜브 이후에도 인간은 또 무언가를 쌓을 것이다
유튜브는 웃기면서 무너지고, 웃기면서 올라간다.한쪽에서는 분노가 터지고, 다른 쪽에서는 고양이가 상을 탄다.극단과 평화, 소음과 진심, 가짜와 진짜가 뒤섞인다. 그리고 인간은, 그 안에서 여전히 꿈을 꾼다. 아직 사라지지 않은 단 하나의 본능. “나도 뭐라도 떠들고 싶다.”
유튜브가 무너져도 괜찮다. 우리는 또 다른 탑을 쌓을 것이다. 조금 허술하고, 조금 시끄럽고, 조금 웃긴 탑. 그래도 또 쌓을 거다. 어차피 인간은, 똑같은 욕망을 매번 새로운 것처럼 포장해내는 데 천부적인 존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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