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러티브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⑥ 지드래곤
몰입을 만들어 내는 서사의 힘을 해부합니다.
닻 없이 항해하던 초인, 권지용이 웃고 있다
88개월 만에 ‘Power’로 돌아온 지드래곤. 그는 이 곡을 미디어의 파워에 대한 노래라고 했지만, 반복되는 “파워” 속에 들리는 건 미디어는 “바보” 같기도 하다. 이중적이고 비틀린 언어, 그 속의 냉소와 유머. 지드래곤다운 복귀다.
마약 논란에 휘말리고, 긴 침묵이 이어졌을 때 그는 “누구의 구남친”이나 “2세대 대표 아이돌”로만 소비되었다. 사람들은 그를 과거형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비판과 의혹은 거칠었고, 그 신화마저도 희미해져갔다.
하지만 그는 사라지지 않았다. 지드래곤은 무대 위에서 늘 자기 자신을 표현해온 예술가였다. 패션, 사운드, 퍼포먼스, 그리고 앨범을 USB에 담는 실험, 홀로그램 공연과 드론 연출, 브랜드 협업까지 — 그는 아이돌이 아니라 미디어 아티스트였다.
그의 음악은 언제나 해석을 요구했다. ‘Heartbreaker’로 K팝 일렉트로닉 시대를 열었고, ‘삐딱하게’에서는 불만과 외로움을, ‘무제’에서는 침묵 속의 진심을 노래했다. 가사는 시였고, 뮤직비디오는 회화였다. ‘권지용’ 앨범은 하나의 전시였고, 팬들은 그가 남긴 단서를 따라 의미를 해석하는 일에 몰입했다. 그의 예술은 메시지가 아니라 해석을 부르는 감정의 지도였다.
그런 서사 구조는 니체가 말한 위버멘쉬(Übermensch), 초인을 떠올리게 한다. 초인은 기존 도덕과 질서를 넘어 스스로의 가치를 창조하는 존재다. 이번 활동에서도 그는 이 단어를 컨셉으로 내세웠다. 자기 스스로를 ‘초인’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그는 아이돌 시스템 안에서 탈피하여 예술가로 진화했고, 그 예술을 브랜드와 세계관으로 확장해왔다.
그는 누구보다 대중적이었지만, 누구보다 고독한 존재였다. ‘지디’라는 이름을 완전히 내놓지도, 버리지도 않았다. 침묵 속에서 자신을 다시 설계했고, 지금 돌아온 그는 이전보다 훨씬 여유롭고 인간적인 얼굴을 하고 있다.
요즘 그의 SNS를 보면 변화가 느껴진다.
무표정한 셀카 대신, 가볍고 유쾌한 장면들. 후배 아티스트들의 게시물에 누른 ‘좋아요’. 어떤 날은 그냥 한 장의 사진으로 하루를 남긴다. 이건 더 이상 기획된 스타의 모습이 아니다. 그는 지금, 자신을 내려놓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창작의 고통’보다 ‘삶의 흐름’을 받아들이고 있다. 초인이기를 멈춘 것이 아니라, 초인의 방식으로 인간을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지드래곤은 BTS와는 또 다르다. BTS는 정해진 서사를 완벽하게 구현한 연기자 집단에 가깝다. 팀워크와 감정선, 위로의 메시지로 전 세계와 공명했고, 그들 각각의 퍼포먼스는 하이브의 철학과 전략을 집대성한 결과였다. RM은 서사를 설계했고, 멤버들은 이를 퍼포먼스로 완성했다. 그들의 힘은 집단의 일관성과 정밀함이었다.
하지만 지드래곤은 혼자 창조하고, 혼자 흔들리고, 혼자 부활한 창작자다. 그의 무대는 연기되지 않았다. 그건 생생한 감정이었고, 때로는 위험했고, 종종 불완전했다. 그의 예술은 설계가 아닌 체온에서 나왔다. 그래서 강력했고, 그래서 더 잔향과 미온이 오래 남는다.
그가 만든 브랜드 ‘피스마이너스원’은 단순한 패션 브랜드가 아니다. 향수, 스니커즈, 액세서리, 드로잉, 공연까지. 그는 자기 삶의 조각을 흩뿌려 하나의 우주를 구축해왔다. 이제 그 조각을 모아 ‘GD월드’라는 새로운 실험이 가능하다. 메타버스든 인터랙티브 전시든, 그가 살아온 시간과 창작물이 하나의 세계가 되는 순간. 그것이 초인이 구축하는 마지막 서사일 것이다.
P.S 그리고 그는 실제로 그 세계를 ‘지구 바깥’으로 확장해 가고 있는 중이다. 국내 최초로 자신의 음원과 뮤직비디오를 우주로 송출하는 프로젝트를 통해 예술이 어디까지 닿을 수 있는지를 직접 보여주고 있다.비틀즈 이후 처음으로 ‘음악을 우주로 보낸 인물’이라는 상징적 기록은 그가 여전히 창작자이며 경계를 넘는 자임을 증명한다.
그에게 지금 건네고 싶은 시는 김현승의 ‘견고한 고독’이다. 초인이 겪는 고통과 침묵, 그리고 그 안에서 피어난 예술의 무게를 이보다 더 정확히 말할 수 있을까.
껍질을 더 벗길 수도 없이
단단하게 마른
흰 얼굴
그늘에 빚지지 않고
어느 햇볕에도 기대지 않는
단 하나의 손발
--
뜨거운 햇빛 오랜 시간의 회유에도
더 휘지 않는
마를 대로 마른 목관 악기의 가을
그 높은 언덕에 떨어지는
굳은 열매
--
지드래곤은 아직 꺾이지 않았다. 견고한 고독 속에서 스스로를 단련해온 그는, 이제 조금씩, 웃으며 다시 항해를 시작한다.
신승호
코리아 메타버스 저널 발행인
전 와디즈 CMO로서 크라우드 펀딩과 스타트업 투자 문화를 대중화시켰으며, 쏘카 CMO로 근무하며 모빌리티 시장에서 브랜드 인지도를 확장했다. Daum 브랜드 마케팅 총괄, Mnet 편성PD로 콘텐츠 마케팅, 채널 아이덴티티티 전략 등 브랜드 정체성과 시장 포지셔닝을 강화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또한 애니메이션 로보카폴리 뉴미디어/커머스 사업총괄, 이머시브 테크기업 올림플래닛의 사업/마케팅을 총괄한 바 있다. 현재 코리아메타버스저널의 발행인으로 메타버스, AI, XR 등 새로운 기술과 미디어 비즈니스의 접점을 연구하고 있으며, AI 시대의 스마트워크와 내러티브를 탐구하는 칼럼을 연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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