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러티브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영화관
몰입을 만들어내는 서사의 힘을 해부합니다
OTT 시대, 영화관은 단순히 영화를 트는 곳이 아닌 추억을 설계하는 공간이 될 수 있을까?
롯데시네마와 메가박스가 합병을 논의 중이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한때 데이트의 성지이자 친구들과의 모임 장소였던 영화관이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는 신호다. 영화관은 한때 우리에게 설렘을 안겨주던 마법 같은 공간이었다. 집, 카페, 식당에 이어 전국민 누구나 쉽게 데이트를 하거나 킬링타임을 할 수 있는 제4의 공간이었다. (최근에는 카셰어링 등으로 자동차가 상위 공간대안으로 올라오고 있다) 또한 영화 ‘시네마 천국’처럼 영사기 뒤에서 세상과 소통하던 순간, 영화관은 세상의 모든 이야기가 펼쳐지는 마법의 게이트였다. 그러나 OTT의 부상과 팬데믹을 지나며, 영화관의 마법은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
이제 영화관은 더 이상 첫 데이트의 설렘을 담기엔 너무나 커져버린 공간이 되었고, 팝콘을 나눠 먹으며 수다를 떨던 킬링타임 장소로서의 매력도 OTT에 밀려 퇴색해버렸다. 대신 우리는 이제 침대에 누워서도, 지하철에서도, 화장실에서도 영화를 감상할 수 있다. 영화관은 더 이상 ‘이 순간, 이 장소에서만 볼 수 있는 콘텐츠’의 성지가 아니게 된 것이다.
OTT는 개인화된 추천 알고리즘을 통해 사용자가 원하는 콘텐츠를 즉각적으로 제공한다. 유튜브는 짧고 강렬한 콘텐츠로 시청자의 시선을 붙잡는다. 반면, 영화관은 아직도 하나의 완성된 영화를 (아날로그 시대의 작법) 동일한 버전으로 반복 상영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방식을 버려야 한다. 영화관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기획 단계부터 다회차 소비를 염두에 둔 콘텐츠 설계가 필수적이지 않을까?
몇 가지 검토할 수 있는 전략방향에 대해 생각해보자. 첫 번째 전략은 멀티 엔딩 콘텐츠다. 넷플릭스의 ‘블랙 미러: 밴더스내치’는 시청자가 선택하는 대로 엔딩이 달라진다. 이러한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 방식을 영화관에서 도입할 수 있다면 어떨까? 첫 번째 상영은 기본 엔딩, 두 번째 상영은 대체 엔딩, 세 번째 상영은 감독이 원래 의도한 ‘감독판 엔딩’으로 차별화한다. 예를 들어, ‘오펜하이머’를 본 관객이 첫 번째 상영에서 원자폭탄 개발 과정을 보고, 두 번째 상영에서 전쟁 이후의 심리적 갈등을 보게 된다면, 동일한 영화지만 완전히 다른 서사를 경험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영화관은 ‘멀티 엔딩 패스’를 제공해 관객이 두 번째, 세 번째 상영을 더 저렴한 가격에 볼 수 있도록 유도할 수도 있다.
두 번째 전략은 해설이 포함된 ‘디렉터즈 컷’ 상영회다. OTT는 메이킹 필름, 인터뷰, 감독 해설 영상을 제공하지만, 영화관에서는 여전히 본편만 트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팬들은 영화가 탄생한 배경과 비하인드 스토리에 목말라한다. 첫 번째 상영은 일반판, 두 번째 상영은 메이킹 필름이 추가된 ‘비하인드 상영’, 세 번째 상영은 감독이 직접 등장해 특정 장면을 해설하는 ‘디렉터즈 컷’ 상영회로 구성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인셉션’ 같은 복잡한 서사구조의 영화는 첫 번째 관람 후 이해하지 못한 장면을 해설로 풀어주는 상영회를 통해 관객의 이해도를 높이고, 이를 소셜미디어에 공유할 기회를 제공할 수도 있다.
세 번째 전략은 스토리 확장형 에피소드 상영이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캐릭터별로 독립된 스핀오프를 제작해 스토리를 확장한다. 영화관에서도 비슷한 방식을 도입할 수 있다. 본편 상영 이후, 특정 캐릭터의 배경 이야기를 다룬 30분짜리 스핀오프를 제작해 ‘확장 상영’을 기획한다. 예를 들어, ‘조커’의 배경 이야기를 다룬 30분짜리 미니 에피소드를 추가 상영하거나, ‘인터스텔라’의 쿠퍼가 블랙홀을 탈출한 이후의 이야기를 20분짜리 스페셜 에피소드로 제작해 영화관에서만 독점 상영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관객은 영화를 본 후에도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다시 영화관을 방문하게 된다.
네 번째 전략은 싱어롱(Sing-Along) 상영관이다. ‘겨울왕국’이나 ‘보헤미안 랩소디’처럼 음악이 핵심인 영화는 팬들이 함께 노래를 부르며 몰입할 수 있는 싱어롱 상영관을 기획할 수 있다. 첫 상영은 일반 상영, 두 번째 상영은 자막과 노래 가사가 함께 나오는 싱어롱 버전, 세 번째 상영은 응원봉과 함께 노래를 따라 부를 수 있는 ‘팬덤 데이’로 구분한다. 영화관은 이 과정에서 한정판 굿즈나 팬덤 티켓 패키지를 판매해 부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이는 ‘BTS 콘서트 뷰잉’처럼 관객이 체험할 수 있는 오프라인 팬덤 이벤트로 확장될 수 있다. 특히 요새는 기존 가수들의 공연실황을 극장에서 상영하는 경우도 늘고 있으니 매력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다섯 번째 전략은 XR을 활용한 몰입형 전시 콘텐츠다. 영화관 내부에 XR 상영관을 마련하고, 본편 상영 후 특정 장면을 실제 공간에서 재현할 수 있는 체험 공간을 구축하는 것이다. ‘아바타’를 본 관객이 영화 속 행성 판도라를 XR로 체험하거나, ‘인터스텔라’의 블랙홀 장면을 360도 몰입형 영상으로 다시 경험할 수 있다면, 영화관은 단순히 영화를 트는 공간이 아닌 ‘스토리월드의 체험장’이 될 수 있다. 관객은 영화관에서 찍은 체험 영상을 소셜미디어에 공유하고, 이를 통해 영화관은 ‘체험형 콘텐츠 허브’로 자리 잡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영화관은 OTT와의 연동을 통해 시청 경험을 확장할 수도 있다. OTT에서 ‘시즌1’을 본 후, 영화관에서 ‘시즌1.5’의 연장 에피소드를 상영하거나, OTT에서 공개된 영화의 후일담을 영화관에서만 독점 상영하는 식으로 콘텐츠의 연계성을 높일 수 있다. 예를 들어, ‘킹덤’ 시즌1이 끝난 후, 영화관에서는 ‘킹덤: 아신전’을 독점 상영하거나, ‘D.P.’ 시즌2가 끝난 후 영화관에서만 볼 수 있는 ‘D.P. 스페셜 에피소드’를 기획하는 식이다.
결국 영화관은 이제 ‘하나의 콘텐츠’를 트는 공간이 아니라 ‘확장된 서사의 장’으로 거듭나야 한다. 우리는 더 이상 영화관에서 단순히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이야기에 몰입하고, 그 순간을 친구들과 공유하고, 내 취향을 재발견하는 공간을 원하고 있다. 야구장이 단순히 경기를 보는 곳이 아닌, 팬덤 문화의 성지가 된 것처럼, 영화관도 ‘추억을 설계하는 공간’, ‘감정을 노래하는 공간’, ‘소셜미디어를 통해 확산되는 공간’으로 재해석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