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러티브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③이수만

몰입을 만들어 내는 서사의 힘을 해부합니다.
사진=SM엔터테인먼트
사진=SM엔터테인먼트

이수만의 서사는 단순한 엔터테인먼트 경영자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는 ‘미래를 설계하는 프로듀서’이다. 가수가 아닌 프로듀서로서, 기획자로서, 산업을 설계한 사람. 그리고 그의 손에서 탄생한 K-POP 시스템은 전 세계 음악 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꿔 놓았다.

지금의 K-POP을 이야기할 때 아이돌 연습생 시스템, 콘셉트 기획, 글로벌 진출 같은 개념들은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처음 만든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그 답은 단연 이수만이다.

이수만은 한국에서 처음으로 ‘기획된 스타’ 시스템을 만든 인물이다. 1980년대 가수에서 프로듀서로 전향한 그는 미국 유학 시절, MTV와 빌보드 차트를 보며 새로운 시대가 오고 있음을 직감했다. 단순히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브랜드가 된 아티스트. 그리고 그는 한국에도 이런 모델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 1989년 SM기획(현 SM엔터테인먼트)이 탄생했다.

그가 내린 첫 번째 결론은 ‘한국식 아이돌 시스템’이었다. 연습생 시스템 도입, 팀 단위 기획과 역할 분배, 캐릭터 중심의 콘셉트 설정, 스토리텔링을 가미한 음악과 무대. 이러한 원칙을 기반으로 탄생한 그룹이 바로 H.O.T.였다. 이후 SM은 동방신기, 소녀시대, 슈퍼주니어, 엑소, NCT, 에스파까지 이어지는 ‘K-POP의 흐름’을 만들어냈다. (여담이지만 박명수는 스스로 SM 1기 출신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수만의 기획력은 단순히 음악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SM의 아티스트들을 하나의 확장된 세계관(광야, KWANGYA) 안에 배치했다. 에스파(aespa)는 기존 K-POP 그룹과 차별화된 메타버스 기반의 세계관을 도입했다. ‘ae’(아바타)라는 개념을 통해 현실과 가상을 연결하고, AI와 블록체인을 활용한 스토리텔링으로 SM의 IP를 확장하며, 광야(KWANGYA)라는 가상 공간을 설정해 SM 아티스트들이 공유하는 스토리라인을 만들었다.

이수만은 단순한 음악이 아니라, 하나의 ‘확장된 IP’를 만들고 있었다. 에스파의 성공은 이를 증명했다. 2020년 데뷔 후, SM의 독창적인 세계관 전략은 빠르게 주목받았고 에스파는 메타버스를 활용한 글로벌 마케팅의 대표 사례가 되었다.

그런데 광야 세계관을 본 일부 팬들 중 일부는 “광야가 대체 어디야? 청담동 어디쯤 있어?”라는 질문이 커뮤니티에서 돌았고 일부는 “광야는 SM 사옥 5층 회의실이 맞다”는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메타버스를 활용한 세계관이 K-POP 팬들에게는 신선했지만 일부에게는 “공부해야 이해할 수 있는 콘셉트”라는 평가도 받았다. 하지만 이수만은 이런 반응을 예상이라도 한 듯 “광야는 철학이다”라는 신비로운 한마디로 논란을 종결시켰다.

이수만의 관심은 언제나 ‘다음 시대’를 향했다. 그는 단순한 음악 프로듀서가 아니라, K-POP을 기반으로 기술과 엔터테인먼트가 결합하는 미래를 구상하는 기획자였다. 최근 그가 투자한 분야들을 보면 그의 시야가 어디까지 확장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드론 기술 기업 투자를 통해 SM의 공연 및 콘텐츠를 혁신하기 위한 준비를 했고 메타버스 기업과의 협업으로 IP를 가상 공간으로 확장하며 AI 음성 합성 및 가상 인간 기술을 활용해 새로운 형태의 아티스트 탄생 가능성을 모색했다.

사진=A2O 공식 유튜브 채널
사진=A2O 공식 유튜브 채널

이수만의 최근 프로젝트 중 하나는 중국 시장을 겨냥한 새로운 아이돌 그룹 A2O다. 그는 K-POP의 핵심 시스템을 중국에 맞춰 현지화하면서도, SM이 구축한 철저한 연습생 육성 방식과 IP 브랜딩 전략을 그대로 적용했다.

A2O는 데뷔 전부터 웨이보와 샤오홍슈(중국판 인스타그램)를 활용해 팬덤을 구축했고 AI 기술을 적용한 콘텐츠 마케팅으로 빠르게 인기를 끌었다. 특히, AI 기반의 가상 멤버를 그룹에 포함시키는 실험적 시도를 통해 미래형 아이돌 그룹의 가능성을 테스트하고 있다. 과거 EXO-M으로 중국 시장을 개척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이번에는 현지 기업들과 손을 잡고 더욱 정교한 글로벌 전략을 펼치고 있다.

사진=NVIDIA 공식 유튜브 채널
사진=NVIDIA 공식 유튜브 채널

이수만의 미래 전략을 이해하려면 최근 엔비디아(NVIDIA) CEO 젠슨 황이 언급한 ‘피지컬 AI(Physical AI)’ 개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젠슨 황은 AI가 가상 세계뿐만 아니라 현실 세계에도 영향을 미치는 시대가 오고 있다고 말했다. 즉, AI가 단순히 데이터를 처리하는 것을 넘어, 실제 물리적인 환경과 결합한다는 것이다.

이수만이 꿈꿨던 K-POP의 확장도 이와 비슷한 개념이다. 피지컬 AI와 결합된 K-POP 콘서트는 AI가 아티스트의 동작을 분석해 퍼포먼스를 최적화하고, 로봇이나 드론을 활용한 무대 연출이 가능해질 것이다. AI와 협업하는 아이돌은 가상 캐릭터와 실제 아티스트가 무대에서 함께 공연하며 AI가 실시간으로 음악과 무대 효과를 조율하는 방식이 될 것이다.

 K-POP이라는 보이지 않던 길을 열었고, 아이돌 시스템이라는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었으며 AI, 메타버스, 드론을 결합한 새로운 음악 산업을 상상하고 있는 이수만. 

‘미래를 설계하는 사람’ 이수만의 인생과 어울리는 시가 있다.  로버트 프로스트 '가지 않은 길' (The Road Not Taken) 이다.

노란 숲 속에 두 갈래 길 나 있어,

나는 둘 다 가지 못하고

하나의 길만 걷는 것 아쉬워

수풀 속으로 굽어 사라지는 길 하나

멀리멀리 한참 서서 바라보았지.

그러고선 똑같이 아름답지만

풀이 우거지고 인적이 없어

아마도 더 끌렸던 다른 길 택했지.

물론 인적으로 치자면, 지나간 발길들로

두 길은 정말 거의 같게 다져져 있었고,

사람들이 시커멓게 밟지 않은 나뭇잎들이

그날 아침 두 길 모두를 한결같이 덮고 있긴 했지만.

아, 나는 한 길을 또 다른 날을 위해 남겨두었네!

하지만 길은 길로 이어지는 걸 알기에

내가 다시 오리라 믿지는 않았지.

지금부터 오래오래 후 어디에선가

나는 한숨지으며 이렇게 말하겠지.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나 있었다고, 그리고 나는—

나는 사람들이 덜 지나간 길 택하였고

그로 인해 모든 것이 달라졌노라고

 

신승호
 코리아 메타버스 저널 발행인


전 와디즈 CMO로서 크라우드 펀딩과 스타트업 투자 문화를 대중화시켰으며, 쏘카 CMO로 근무하며 모빌리티 시장에서 브랜드 인지도를 확장했다. Daum 브랜드 마케팅 총괄, Mnet 편성PD로 콘텐츠 마케팅, 채널 아이덴티티티 전략 등 브랜드 정체성과 시장 포지셔닝을 강화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또한 애니메이션 로보카폴리 뉴미디어/커머스 사업총괄, 이머시브 테크기업 올림플래닛의 사업/마케팅을 총괄한 바 있다. 현재 코리아 메타버스 저널의 발행인으로 메타버스, AI, XR 등 새로운 기술과 미디어 비즈니스의 접점을 연구하고 있으며, AI 시대의 스마트워크와 내러티브를 탐구하는 칼럼을 연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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