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영화제 개막작 '그를 찾아서' 비니에비츠 감독…AI가 시나리오 써
29회째를 맞은 국내 최대 장르 영화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화두는 단연 인공지능(AI)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AI 영화 국제경쟁 부문을 통해 작품을 소개하고 AI 국제 콘퍼런스, AI 필름 메이킹 워크숍을 연다. 개막작으로는 AI가 쓴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그를 찾아서'를 선정했다.
독일 감독 피오트르 비니에비츠가 연출한 이 작품은 괴짜 감독으로 유명한 베르너 헤어조크의 모든 영화를 학습한 AI가 새롭게 창작한 시나리오로 만들어졌다. 헤어조크 감독에 관해 공부한 AI가 '헤어조크 스타일'로 만든 영화인 셈이다.
"헤어조크가 '4천500년 후에도 컴퓨터는 내 영화만큼 훌륭한 영화를 만들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 게 '그를 찾아서'를 만든 결정적 계기가 됐습니다. 그의 말에서 인간으로서 느끼는 우월성, 기술에 대한 공포가 느껴졌거든요."
4일 부천에서 만난 비니에비츠 감독은 이 작품의 시작점을 묻는 말에 이렇게 답했다.
그는 "헤어조크의 작품에 도전하기 위해 만든 영화도, 그의 작품을 단순히 복제하기 위해 만든 영화도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를 찾아서'는 가상의 독일 도시에서 발생한 한 공장 노동자의 미스터리한 죽음에 관한 이야기다. 헤어조크 감독을 떠올리게 하는 인물이 내레이션을 맡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이야기를 이끈다. AI가 만든 세계관, 캐릭터, 대사 등 주요 요소는 인간 창작자의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
비니에비츠 감독은 "AI가 영화에 처음 붙인 제목이 '놀랍게도 평범한 꿈을 꾸는 영웅에 대한 이야기'였다"고 말했다.
"이 제목이 AI 영화의 답을 제시한다고 생각해요. 보통 AI라고 하면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환상적인 현실을 보여줄 거라고 생각하지만 너무나 놀랍지 않은 시나리오가 나왔습니다. 인간이 생각할 수 없는 무언가를 보여주지는 못했죠."
그는 이 작품이 단순히 기술이 이 정도로 발달했음을 보여주는 게 아닌, 진보한 기술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 더 주목한 영화라고 강조했다.
그는 "(기술의 발전으로 만들어진) 리얼리티를 우리 스스로 의심하고 질문을 던지게 하고 싶었다"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쏟아지는 거짓 정보에 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될 것"이라고 했다.
최근 몇 년간 영화계에서는 AI 활용을 어디까지 허용할지를 두고 찬반이 뜨겁다. 효율적인 기술인 AI는 창작에서 인간과 협업 체제를 이룰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오지만, AI를 향한 기존 영화인들의 시선은 아직은 회의적인 분위기다. 기계가 인간의 경험에 기반한 감정을 흉내 낼 수 없고 이를 예술로도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2023년 할리우드에서는 AI가 일자리를 빼앗을 거란 위기감이 감돌면서 영화인들의 대규모 파업이 일어나기도 했다.
비니에비츠 감독은 "과거에도 새로운 기술이 나올 때마다 기존 산업을 죽일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며 "카메라가 발명됐을 때 그림은 끝이라 했고, 텔레비전이 상용화됐을 때 영화는 아무도 안 볼 것이라고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영화는 항상 산업의 영역이다. 산업에는 무조건 기술의 도움이 필요하다. 누가 어떻게 (기술을 사용해) 만드느냐가 중요하다. 기술은 영화를 죽이지 않는다. 이 기술로 어떻게 하면 영화를 더 잘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할 때다."고 강조했다.
신주백 기자 jbshin@kmjourn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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