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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도슨트와 함께 이제 '주말엔 아트'입니다.

권력과 사랑, 그리고 초상화

이 그림의 주인공은 '체칠리아 갈레라니'입니다. 그녀는 당시 이탈리아 밀라노를 다스리던 '루도비코 스포르차' 공작의 애인이었죠. 체칠리아는 단순한 연인을 넘어, 뛰어난 지성과 예술적 재능으로 공작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습니다. 이 초상화는 바로 그녀가 자신의 높은 지위를 공공연하게 과시하기 위해 그려진 것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많은 동물들 중 하필 흰 족제비를 안은 모습일까요?

레오나르도 다 빈치, 흰 족제비를 안은 여인 (1490), 패널에 유화

작품명: 흰 족제비를 안은 여인

작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

제작 연도: 1490년

기법: 패널에 유화

크기: 54 x 39 cm

소장처: 폴란드 차르토리스키 미술관

숨겨진 상징, 흰 족제비의 비밀

체칠리아 갈레라니의 초상화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그녀의 품에 안긴 흰 족제비입니다. 이 동물은 단순한 소품이 아니라, 다층적인 의미를 품은 암호 같은 존재입니다.

애인을 상징하는 흰 족제비

먼저, 흰 족제비는 루도비코 스포르차 공작을 직접적으로 상징합니다. 루도비코는 ‘흰 족제비 기사단’의 일원이었으며, 족제비는 그의 문장이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그림 속 체칠리아가 족제비를 안고 있다는 사실은 곧 그녀와 공작의 관계를 은유하는 장치라 할 수 있습니다.

둘째, 다 빈치는 언어유희까지 활용했습니다. 그리스어로 족제비는 갈라이(galay)라 불리는데, 이는 모델의 성 갈레라니(Gallerani)와 발음이 흡사합니다. 단순한 동물이 곧 모델의 이름을 암시하는 일종의 서명 역할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셋째, 족제비는 순결과 고결함의 상징입니다. 당시에는 족제비가 더러움에 물들 바에는 차라리 죽음을 택한다는 속설이 있었기에, 이는 체칠리아가 순수하고 고귀한 사랑을 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장치로 해석됩니다.

그림 외각, 그림자 영역에서 잘 관찰되는 스푸마토 기법
그림 외각, 그림자 영역에서 잘 관찰되는 스푸마토 기법

흐릿한 경계의 아름다움, 스푸마토 기법

이 작품을 특별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요소는 역동적인 구도와 스푸마토 기법입니다. 스푸마토는 '연기처럼 희미한'이라는 뜻으로, 마치 초점이 희미해진 카메라 속 한 장면처럼 물감의 경계를 부드럽게 처리하여 형태를 모호하게 만드는 다 빈치만의 독창적인 기법입니다.

그녀의 손은 족제비의 몸을 살며시 감싸고 있으며, 이는 부드러운 긴장감과 생생한 리얼리티를 만들어냅니다. 경계를 흐릿하게 처리하는 다 빈치 특유의 스푸마토 기법은 이러한 동작에 자연스러운 깊이를 더해줍니다.

그림 속 뒷이야기를 상상하게 만드는 인물의 자세
그림 속 뒷이야기를 상상하게 만드는 인물의 자세

마치 순간을 포착한 듯한 생동감 있는 자세

그림 속 체칠리아는 몸은 왼쪽을 향하고 있지만, 얼굴은 오른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있습니다. 마치 지금 막 누군가의 인기척을 느끼고 돌아본 듯한 순간을 포착한 것이죠. 이러한 역동적인 자세는 그림이 그려질 당시를 상상하게 하며, 인물에 생생한 생명력을 불어넣습니다.

이처럼 흰 족제비를 안은 여인은 한 여인의 아름다움뿐 아니라, 권력자와의 관계, 언어적 암호, 순결의 상징, 그리고 순간의 생동감까지 담아낸 르네상스적 지성과 감각의 결정체입니다. 다 빈치는 이 작품을 통해 “초상화”를 정적인 기록의 차원을 넘어, 이야기와 상징, 그리고 인간의 심리를 담아내는 예술로 끌어올렸습니다.

정소희 인턴기자  jshee4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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