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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도슨트와 함께 이제 '주말엔 아트'입니다.

전쟁의 그림자, 그리고 영혼의 갈증

이 그림이 탄생한 1950년대 초반은 제2차 세계대전의 광기가 막을 내린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였습니다.

과학 기술의 발전은 인간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었지만, 동시에 핵무기라는 파괴적인 힘으로 인류를 위협했습니다.

사람들은 물질적인 풍요 속에서도 정신적인 공허함과 불안을 느꼈고, 영적인 위안과 구원에 대한 갈증이 커져갔습니다.

살바도르 달리, 십자가의 성 요한의 그리스도 (1951), 캔버스에 유화
살바도르 달리, 십자가의 성 요한의 그리스도 (1951), 캔버스에 유화

작품명: 십자가의 성 요한의 그리스도 (Christ of Saint John of the Cross)

작가: 살바도르 달리

제작 연도: 1951년

기법: 캔버스에 유화

크기: 205 x 116 cm

소장처: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켈빈그로브 미술관

달리는 이런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종교적인 주제에 깊이 파고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단순히 전통적인 종교화를 답습하는 대신, 자신의 독창적인 초현실주의 언어로 신성함과 고통, 그리고 구원이라는 거대한 주제를 탐구하려 했습니다.

이 그림은 바로 그 시대의 혼란 속에서 달리가 찾아낸 영적인 해답이자, 인간의 고통을 초월한 신성한 존재에 대한 경외심을 담고 있습니다.

달리의 신념, 광기와 천재성의 충돌

살바도르 달리는 평생을 꿈과 무의식, 그리고 환상을 캔버스 위에 구현하는 데 바쳤습니다.

그의 작품은 극도의 사실주의적 기법과 기괴하고 비이성적인 내용이 충돌하며 독특한 긴장감을 자아냅니다.

그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심취했고 현실을 해체하고 재구성했습니다.

하지만 달리는 그저 '기이한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깊은 종교적 신념을 가지고 있었고, 특히 가톨릭 신앙에 대한 탐구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의 그리스도>는 바로 달리의 이런 양면성, 즉 초현실주의적 환상과 깊은 종교적 믿음이 극적으로 충돌하며 빚어낸 걸작입니다.

그는 이 그림을 통해 전통적인 종교화의 틀을 깨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신성함에 접근하려 했습니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고통, 그 속의 평온함

이 작품은 보는 순간, 마치 하늘을 나는 새가 내려다보는 듯한 파격적인 시점으로 우리를 압도합니다.

우리는 거대한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의 등과 어깨, 그리고 팽팽하게 당겨진 팔의 근육을 선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못 없이 매달린 예수 그리스도
못 없이 매달린 예수 그리스도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의 손에는 못이 박혀있지 않습니다. 이 그림에서는 전통적인 십자가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고통스러운 표정이나 피 흘리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대신, 예수는 평온하고 고요한 모습으로 십자가에 매달려 있습니다. 그의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그 존재 자체에서 느껴지는 초월적인 평화로움은 보는 이에게 깊은 경외감을 선사합니다.

한줌의 풍경처럼 작게 펼쳐진 호수
한줌의 풍경처럼 작게 펼쳐진 호수

그의 아래로는 마치 장난감처럼 작게 보이는 고즈넉한 호수와 어선, 그리고 평화로운 마을 풍경이 펼쳐집니다.

이 풍경은 달리의 고향인 스페인 포르트 리가트의 풍경을 연상시키며, 거대한 고통의 상징인 십자가와 대비되어 더욱 극적인 효과를 줍니다.

마치 인간의 고통이 아무리 크더라도, 그 아래 세상은 여전히 평화롭게 흘러간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듯합니다. 

고통을 초월한 신성함, 그리고 구원의 메시지

<십자가의 성 요한의 그리스도>는 인간의 고통과 존재의 의미, 그리고 구원이라는 거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달리는 이 그림을 통해 전통적인 십자가상의 고통과 희생을 넘어, 고통을 초월한 신성한 존재의 평온함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예수는 고통받는 인간이 아니라, 모든 것을 포용하고 초월하는 신적인 존재로 그려집니다.

이 파격적인 시점은 단순히 시각적인 충격을 넘어, 인간의 관점을 넘어선 신의 시선을 상징합니다. 마치 신이 인간의 고통을 내려다보며, 그 안에 담긴 더 큰 의미를 깨닫게 하는 듯합니다.

이 작품은 당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동시에 현대인의 불안한 영혼에 깊은 위안과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며 달리의 가장 중요한 종교화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정소희 인턴기자 jshee4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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