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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디까지 무너질 수 있을까”

끝없이 펼쳐진 바다 위. 무능한 권력 아래 버려진 사람들, 그들이 맞닥뜨린 절망은 과연 어디까지였을까. 테오도르 제리코의 메두사호의 뗏목은 단순한 난파선 사고가 아닌, 인간을 둘러싼 사회의 민낯을 깊이 들여다보게 합니다.

 테오도르 제리코, 캔버스에 유화, 1819년 作, 716 x 491cm
메두사호의 뗏목, 테오도르 제리코 1819년 作

작품명: 메두사호의 뗏목

작가: 테오도르 제리코

제작연도: 1819년

기법: 캔버스에 유화

크기: 716 x 491 cm

소장처: 파리 루브르 박물관

메두사호 침몰, 그 후

1816년, 프랑스 군함 메두사호는 아프리카 해안 근처에서 암초에 걸려 침몰합니다.

배를 지휘하던 함장은 정치 인맥으로 자리에 오른 무능한 귀족이었고, 위기의 순간에도 계산적인 판단만 했습니다. 상류층과 장교들만 구명보트에 태운 채, 선원과 병사, 일반인 등 147명을 뗏목에 태워 바다 한가운데 버려두고 떠나버렸죠.

그 뗏목엔 조타 장치도, 돛도 없었습니다. 바닷물이 점점 배어들고, 먹을 것이라고는 와인 한 병과 비스킷 몇 조각뿐. 점차 사람들은 탈진했고, 굶주림은 서로를 향한 공포로 바뀌었습니다. 13일 동안 표류한 끝에, 단 15명만이 살아남았습니다.

고통과 희망이 교차하는 장면들

제리코는 이 참혹한 사건을 단순히 묘사하지 않았습니다. 무려 7m가 넘는 대형 캔버스 위에, 살아남기 위한 사투와 그 속에서 무너져가는 인간의 감정을 생생하게 담아냈죠.

작품 속 희망을 잃거나 이미 숨을 거둔 사람들
작품 속 희망을 잃거나 이미 숨을 거둔 사람들

그림 아래쪽에는 이미 숨이 멎은 사람들의 시신이 흩어져 있고, 어떤 이는 죽은 이의 몸을 품에 안고 머리를 숙이고 있습니다. 그 옆에는 머리를 움켜쥐고 울부짖는 인물이 고통을 표현하듯 서 있습니다. 이 장면만 봐도, 보는 사람은 쉽게 눈을 떼기 어렵습니다.

작품 속 희망을 버리지 않고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무리
작품 속 희망을 버리지 않고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무리

반대로 위쪽엔 여전히 구조를 바라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가장 높은 곳에서는 붉은 천을 높이 들어 흔들고 있는 남자가 보이는데, 이는 그야말로 절망 속 마지막 희망을 붙잡고 있는 장면입니다.

그림 속 삼각형 구도

제리코는 이 작품을 단순한 장면 배열이 아닌, 세 개의 삼각형 구도를 중심으로 정교하게 설계했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화면 아래쪽 노란 삼각형입니다. 절망에 빠져 쓰러진 시신들과 턱을 괸 채 멍하니 앉아 있는 인물들이 이 구도의 중심에 자리합니다. 삶을 포기한 듯한 그들의 자세는 이 장면이 인간 존재의 바닥, 곧 죽음과 절망의 무게를 담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 위로는 중앙의 붉은 삼각형이 이어집니다. 돛대를 중심으로, 서로의 몸에 매달려 버티고 있는 인물들입니다. 쓰러질 듯 다시 일어서는 이들의 몸짓은 마치 마지막 힘을 모아 구조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처럼 보입니다. 이 삼각형은 고통 속에서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 갈망과 생존 의지를 상징합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높은 곳에 솟은 파란 삼각형은, 구조선을 향해 붉은 천을 높이 들어 흔드는 인물을 꼭짓점으로 형성됩니다. 바다 너머 수평선을 바라보며 한 줄기 희망에 모든 의지를 실은 이들의 자세는, 이 비극의 한가운데서도 ‘살아야 한다’는 본능을 강하게 드러냅니다.

세 개의 삼각형은 서로 겹치듯 연결되어 있어, 관객의 시선을 절망에서 시작해 갈망을 지나 희망으로 끌어올립니다. 어두운 하늘과 회녹색의 바다가 둘러싼 이 장면 속에서, 가장 위에 위치한 붉은 천은 그 자체로 생존의 신호이자 이 그림이 우리에게 보내는 마지막 빛이 됩니다.

테오도르 제리코가 그림을 통해 건내는 질문

이 작품은 그저 과거의 비극을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단순한 난파선의 비극을 넘어, 권력의 무능과 배신, 인간의 본성과 존엄에 관한 냉혹한 고발이며, 시대를 초월해 여전히 우리에게 묻고 있는 듯합니다.

“누군가 바다 위에서 구조를 기다릴 때, 당신은 손을 내밀겠습니까? 아니면 눈을 돌리고 외면하겠습니까?”

정소희 인턴 기자  jshee4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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