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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 ‘세계 최초’ HBM4 양산 선언

SK하이닉스는 지난 9월 12일, 6세대 고대역폭 메모리(HBM4) 개발을 성공적으로 완료하고 세계 최초로 양산 체제를 구축했다고 밝혔다. 이는 AI 인프라 시장에서 기술 리더십을 공고히 하는 이정표로 평가받는다.

HBM4는 전작 대비 2배 증가한 2,048개의 I/O 채널을 기반으로 대역폭을 대폭 향상시켰으며, 전력 효율 역시 40% 이상 개선됐다. 또한 국제반도체표준협의기구(JEDEC)의 표준인 8Gbps를 넘어선 10Gbps 이상의 동작 속도를 구현하면서, 기존 AI 메모리의 병목 현상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기술적 전환점을 제시했다.

HBM4 발표 직후, 주가는 ‘52주 신고가’…시장 반응은 ‘뜨겁다’

HBM4 양산 발표 이후 SK하이닉스의 주가는 하루 만에 7% 급등하며 32만8500원으로 마감됐다. 이로 인해 시가총액은 223조 원을 돌파하며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는 지난해 CES 2024에서 곽노정 대표이사가 제시한 ‘시총 200조 원 달성’ 목표를 약 1년 9개월 만에 초과 달성한 결과다. 시장의 기대감과 기술 신뢰가 맞물리며 상승세를 이끌었다. 업계에서는 이번 주가 상승이 단기적인 투자 심리에 따른 반응이라기보다는, SK하이닉스가 확보한 기술 우위에 대한 구조적인 재평가로 보고 있다.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  사진=SK하이닉스 제공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  사진=SK하이닉스 제공 

HBM4가 진짜 ‘게임 체인저’가 되려면

기술적으로 주목받는 HBM4가 실제 시장에서 ‘게임 체인저’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가 충족되어야 한다. 우선, 기술 선도와 시장 지배는 엄연히 다른 개념이다.

현재 HBM 제품은 전체 메모리 시장에서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으며, 특정 AI 고객군에 집중된 수요 구조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SK하이닉스가 HBM 분야의 기술 우위를 실제 매출 및 시장 지배력으로 연결하려면, 고객 다변화와 수익 구조의 확장이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삼성전자와 마이크론의 추격도 변수다. 두 기업은 이미 HBM4 샘플을 주요 고객사에 제공 중이며, 2026년 양산 계획을 구체화하고 있다. 기술 격차가 단기간에 좁혀질 가능성이 큰 만큼, SK하이닉스의 리더십 유지 전략이 주목된다.

AI 수요 사이클, 고점인가 아닌가

SK하이닉스의 HBM4는 AI 인프라 수요 증가에 따른 기대감 속에서 공개됐다. 그러나 AI 수요 사이클이 고점을 통과하고 있는지에 대한 논란도 존재한다.

현재의 AI 투자는 엔비디아,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오라클 등 거대 기술 기업들이 주도하고 있으나, 이들 역시 데이터센터 전력 문제, 인프라 운영 비용, 투자 회수 기간 등을 놓고 조정 국면에 들어설 가능성이 있다.

AI 반도체 수요가 특정 시기에 집중된 ‘버블’인지, 아니면 지속적 기술 진화에 따른 구조적 성장인지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고 있다. 이에 따라 SK하이닉스는 향후 변동성에 대응하기 위해 사업 포트폴리오를 반드시 강화해야 한다.

SK하이닉스의 HBM4.  사진=SK하이닉스

SK하이닉스의 반전 히스토리

SK하이닉스는 2022~2023년 메모리 업황 침체 속에서도 기술 투자를 지속하며 위기를 기회로 바꿨다.

2023년에는 엔비디아 H100에 HBM3을 단독 공급하며 글로벌 AI 시장에서 입지를 다졌고, 이후 HBM3E와 HBM4까지 연속적으로 개발에 성공하며 기술력을 입증했다. 과거 낸드 부문에서 삼성에 밀렸던 경험을 반면교사 삼아, HBM과 같은 고부가 가치 메모리에 집중한 전략이 주효했다.

10여 년 전 세계 최초로 HBM1을 상용화한 이후, SK하이닉스는 2세대 HBM2, HBM2E, HBM3, HBM3E를 거쳐 HBM4에 이르기까지 끊임없는 기술 혁신을 지속해왔다. 지금의 ‘기술 1등’ 타이틀은 하루아침에 얻어진 것이 아니다.

앞으로의 과제는 ‘지속 가능한 기술 리더십’

HBM4의 성공은 SK하이닉스에 명확한 기술 우위를 가져다줬지만, 그것만으로는 향후 5년을 보장할 수 없다.

SK하이닉스가 진정한 ‘풀스택 AI 메모리 프로바이더’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HBM 외 메모리군의 경쟁력 확보 ▲고객 다변화 ▲전력 효율 중심 기술 개발 ▲기술 인력 확대와 공정 혁신이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

또한 엔비디아와의 협력에만 기대기보다는, 인텔, AMD, 구글 TPU 등 다양한 AI 생태계에 걸맞은 제품군을 확대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공급망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해외 생산 거점 확장도 핵심 과제로 꼽힌다.

‘AI 황금기’는 오래 가지 않는다…이젠 방어 전략이 필요하다

HBM4는 분명히 기술적 이정표다. 하지만 SK하이닉스가 진짜로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더 냉철한 전략이 필요하다.

‘AI 황금기’는 길지 않을 수 있다. 시장은 언제든 조정을 겪을 수 있고, 기술 격차는 금세 좁혀질 수 있다. 지금 SK하이닉스가 보여줘야 할 것은 공격 이후의 지속 가능한 방어 전략이다.

HBM4는 단지 시작일 뿐이며, 앞으로의 경쟁은 기술력과 사업 전략, 시장 읽기의 정교함을 모두 요구한다. 진짜 승부는 지금부터다.

신주백 기자 jbshin@kmjourn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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