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만 옳다”와 “우리만 피해자다” 사이에서 흔들리는 집단 자의식
‘영포티(Young Forty)’라는 말이 있다.
40대지만 스스로를 여전히 청춘이라 주장하는 사람들. 혹은 밀레니얼 감성을 소비하며 자신을 젊다고 증명하려는 세대. 나는 이 단어가 그저 가벼운 농담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이 영포티라는 정체성이 하나의 사회적 전선이 되고 있음을 체감한다.
세대 갈등은 언제나 있었다.
기성세대는 “우리가 고생해서 길을 닦았다”라 말하고, 새로운 세대는 “당신들 덕에 기회가 사라졌다”라 맞선다. 문제는 이 갈등이 예전처럼 토론과 논쟁의 장에서 다뤄지는 게 아니라, 알고리즘 미디어 속에서 희화화된 전쟁이 된다는 점이다. 짤방과 밈, 짧은 영상 속에서 “라떼는 말이야”와 “꼰대”는 웃음거리로 소비되고, 반대편도 “요즘 것들은…”이라며 비슷하게 응수한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보다는, 상대를 하나의 캐릭터로 축소해버린다.
알고리즘은 갈등을 좋아한다.
분노와 비난이 더 많은 클릭과 체류 시간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꼰대몰이’나 ‘MZ 비판’ 같은 콘텐츠는 쉽게 확산되고, 사람들은 점점 “내 세대만이 피해자”라는 믿음을 강화한다. 아이러니한 건, X세대, 밀레니얼, Z세대 모두 똑같이 이 피해의식의 함정에 빠져든다는 사실이다. “우리만 옳다, 우리만 억울하다”라는 동일한 프레임으로 싸우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다르다고 믿는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 싸움이 실제보다 과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액체 근대’라는 개념으로 현대 사회의 불안을 설명했다. 안정된 정체성을 찾기 어려운 시대일수록, 사람들은 더욱 또렷한 소속감을 갈망한다. 세대라는 구분선은 그 갈망을 충족하기 좋은 도구다. 하지만 그 경계가 너무 뚜렷해질 때, 갈등은 카툰처럼 단순화되고 ‘우리’와 ‘그들’은 희화된 전쟁 속에 갇힌다.
영포티라는 말은 사실 웃고 넘길 수 있는 별칭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는 아직 젊다”라는 선언이자, “우리는 억울하다”라는 방어막으로 사용된다. MZ는 기성세대에, 기성세대는 또 위 세대에, 모두가 자기 피해를 강조한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현실은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어떤 40대는 여전히 스타트업에서 새로운 도전을 즐기고, 어떤 20대는 이미 부동산 임대소득으로 은퇴를 꿈꾼다. 세대 내부의 격차가 세대 간의 격차보다 더 큰 경우도 많다.
결국 문제는 플랫폼이다.
우리가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플랫폼을 통해 보고 있는 세대 갈등은 진짜보다 훨씬 과장된 ‘버추얼 리얼리티’일 수 있다. 알고리즘은 우리가 보고 싶어 하는 갈등만 보여주고, 우리는 그것을 사회 전체의 진실처럼 착각한다. 진화심리학에서 말하는 ‘확증편향’이 집단 수준에서 증폭된 셈이다.
그래서 영포티를 포함한 모든 세대가 던져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나는 진짜 현실을 보고 있는가, 아니면 알고리즘이 보여주는 희화된 갈등에 반응하고 있는가?” 세대 간의 균열은 피할 수 없다. 하지만 그 균열을 웃음거리로만 소비하다 보면, 우리가 놓치고 있는 건 결국 함께 풀어야 할 문제들이다.
영포티라는 이름을 당당히 즐기는 건 좋다. 다만 ‘우리만 피해자’라는 프레임에 갇히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짜 영(Young)한 태도일지 모른다.
신승호 KMJ 발행인
일喜일悲 _ 누구나 일을 하며 기쁠 때와 슬플 때가 있다. 다양한 성장 경험 속에서 진화 중인 우리 시대 스마트워커를 위한 나침반이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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