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블록부터 메타까지…해외는 조용히 메타버스를 키우고 있다
한국형 메타버스 실패 이유는 기술 아닌, ‘지속성’과 ‘사용자 동기’ 부족
‘AI+안경+IP’ 결합한 메타버스 2.0, 생활 속으로 다시 스며드는 중
2021년의 약속, 2023년의 버블, 그리고 지금
2021년, 메타버스는 세상의 중심이었다. 메타의 마크 저커버그 CEO는 “모바일 인터넷의 후계자”를 선언했고, 엔비디아의 젠슨 황은 “디지털 트윈의 시대”를 예고했다. 국내에서도 제페토, 이프랜드, 싸이월드Z 등 대형 플랫폼이 등장했고, 정부와 기업은 앞다퉈 예산과 인력을 투입했다.
하지만 그 약속은 오래가지 못했다. NFT와 가상 부동산을 둘러싼 투기만 남긴 채, 대중의 기대는 빠르게 식었다. 정부 지원 사업은 종료되었고, 크리에이터와 개발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메타버스는 ‘신기루’로 기억되며 AI와 생성형 콘텐츠로 관심은 이동됐다.
레이밴 글래스로 다시 돌아온 ‘가상세계’
2025년 9월, 메타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메타 커넥트(Meta Connect)’에서 AR 디스플레이가 탑재된 첫 번째 레이밴 스마트 글래스(Ray-Ban Meta Display)를 공개했다. 이 제품은 단순한 카메라형 웨어러블이 아니라, 실시간 번역·텍스트 표시·제스처 인식이 가능한 ‘스마트 HUD’ 기기다.
소비자는 이제 메타 AI의 도움을 받아 눈앞 세상을 해석할 수 있게 됐다. 문자 메시지를 띄우고, 길안내를 받고, 말을 번역하는 기능은 그 자체로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허문다.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메타버스라는 개념이, 이제는 AI와 가벼운 안경이라는 실체를 통해 다시 일상에 스며들기 시작한 것이다.
로블록스는 메타버스가 아닌 ‘경제 생태계’로 진화했다
한편, 메타버스를 단순한 유행으로 소비하지 않은 곳에서는 꾸준한 성장이 이어졌다. 대표 사례는 로블록스(Roblox)다. 로블록스는 2025년 2분기 기준 일일 활성 이용자(DAU) 1억1,180만 명, 분기 체류 시간 274억 시간을 기록했다. 2024년 대비 체류 시간이 증가하며 사용자 몰입도가 오히려 높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2023년 8월 블랙핑크와 협업한 '더 팰리스(The Palace)'는 기존 이벤트 중심의 ‘쇼룸형 메타버스’가 아닌, 팬들이 일상처럼 방문하는 ‘상설형 팬 허브’ 모델로 주목받았다. 아바타로 사진을 찍고, 뮤직비디오 테마 공간을 둘러보며, 친구들과 함께 콘서트 후기를 나누는 이 경험은 가상 공간을 하나의 디지털 커뮤니티 생태계로 탈바꿈시켰다.
한국은 왜 실패했나…기술보다 중요한 ‘지속 가능성’
국내 메타버스 산업의 실패 원인은 단순히 기술력 부족이 아니다.
첫째, 메타버스 프로젝트 대부분이 정부 과제 중심으로 단기 성과만 추구했다. 과제가 끝나면 서비스도 사라지는 구조는 사용자와 운영자 모두의 피로도를 키웠다.
둘째, 사용자가 메타버스를 찾아야 할 ‘일상적 이유’가 없었다. 기술은 있었지만, 콘텐츠·팬덤·이용 동기가 약했다.
셋째, 자체 생태계를 만들지 못한 채 해외 플랫폼과의 연결도 부족했다. 로블록스와 같은 글로벌 플랫폼에 한국 IP나 크리에이터가 자연스럽게 유입될 수 있는 통로가 사실상 없었다.
다시 오는 메타버스, 이번에는 ‘다르게’ 온다
지금의 메타버스는 더 이상 화려한 가상 배경이나 이벤트성 공간에 머무르지 않는다. AI·스마트 글래스·IP 기반 콘텐츠가 결합된 ‘생활형 메타버스’로 진화 중이다.
예컨대 레이밴 메타글래스는 AI가 실시간 장면을 분석하고, 필요한 정보를 안경 위로 띄운다. 이는 과거의 '메타버스 접속' 개념이 아닌, 현실 위에 가상 요소가 ‘겹쳐지는 경험’을 가능하게 한다.
또한 크리에이터 경제는 메타버스를 유지시키는 실질적 동력이다. 로블록스의 수익 모델은 단순 광고가 아니라 사용자 제작 콘텐츠(UGC)에 대한 보상과 아이템 거래 등 ‘이코노미’를 중심에 둔다. 이런 구조는 메타버스를 일시적 유행이 아닌 장기적 플랫폼으로 만들고 있다.
메타버스는 ‘다시’ 오고 있다, 다만 ‘다르게’ 온다
2021년의 메타버스는 거품이었다. 그러나 2025년의 메타버스는 현실에 깊숙이 파고든 기술과 콘텐츠, 그리고 생태계다.
AI가 상황을 인식하고, 글래스가 눈앞 세상을 확장하며, 크리에이터와 IP가 생태계를 만든다.
이것이 메타버스 2.0의 조건이며, 이 흐름에 한국이 다시 올라탈 수 있을지 여부는 생태계를 얼마나 ‘지속 가능하게’ 설계하느냐에 달려 있다.
테크풍운아 칼럼니스트 scienceaza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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