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손끝으로 혁명을 만든 디자이너가 이제는 ‘화면 없는 미래’를 디자인하고 있다. 오픈AI와 손잡은 조니 아이브가 다시 세상을 설계 중이다.
■ 아이폰의 신화에서 AI의 실험실로
2007년 1월, 스티브 잡스가 세상에 아이폰을 들고 나왔을 때, 그 옆에는 언제나 한 남자가 있었다. 바로 ‘디자인의 영혼’ 조니 아이브였다. 그가 창조한 멀티터치 인터페이스는 인간의 손짓을 기술의 언어로 번역한 첫 혁명이었다.
그로부터 18년 후인 2025년 10월, 아이브는 오픈AI 데브데이 무대에서 전혀 다른 문장을 꺼냈다.
“멀티터치는 당시엔 해방적이었지만, 인공지능 시대에는 구식이죠.”
그의 이 한마디는 기술 업계 전체를 뒤흔들었다. 아이브가 다시 한 번 ‘혁명’을 준비하고 있다는 신호였기 때문이다.
■ 오픈AI와의 결합, ‘io’ 협업으로 시작된 새로운 여정
아이브는 2019년 애플을 떠난 뒤 LoveFrom이라는 디자인 회사를 세우고, 건축가·그래픽 디자이너·UX 디자이너들과 함께 “학제 간 창의성”을 탐구했다.
그가 오픈AI의 샘 올트먼을 처음 만난 것은 챗GPT가 등장한 직후였다. “AI를 디자인적으로 표현할 방법이 있지 않을까?” 그 질문이 모든 시작이었다.
2024년, 그는 AI 하드웨어 스타트업 io(아이오)를 세웠고, 이듬해 오픈AI가 io 팀을 흡수하며 협력 관계를 공식화했다. 규모는 공식적으로 공개되지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65억 달러(약 9조 원) 규모의 전략적 협력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날 이후, 오픈AI는 더 이상 오직 ‘소프트웨어만 만드는 회사’가 아니게 되었다. AI의 물리적 형태, 즉 ‘인공지능이 깃드는 기기’를 구현하는 새로운 기업으로 진화를 선언한 것이다.
■ 오픈AI 데브데이 2025,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말하다
2025년 10월 6일, 샌프란시스코. 오픈AI 데브데이 2025 무대 위에서 샘 올트먼과 조니 아이브가 나란히 앉았다. 마치 스티브 잡스와 아이브의 전설적 듀오가 다시 재현된 듯한 장면이었다.
아이브는 대담에서 “우리는 AI와 쉽지 않은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이 강력한 기술이 인간을 압도하지 않고, 인간적일 수 있는 형태를 찾아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가 디자인 중인 기기에 스스로 미소 지을 수 없다면, 그것은 잘못된 길”이라며 “기술이 인간적이지 않으면 결코 효율적일 수 없다”고 단언했다.
그의 언어는 시적이었지만, 그 안에는 명확한 철학이 있었다. 바로, ‘AI를 기계로 만들지 말자. 인간의 동반자로 만들자.’는 것이었다.
■ 보이지 않는 기기, ‘화면 없는 혁명’의 단서들
공식 이미지나 프로토타입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아이브-오픈AI 팀의 AI 기기와 관련해 몇 가지 핵심 단서가 흘러나왔다.
▲ 스크린리스(Screen-free) : 디스플레이가 없는 착용형 또는 휴대형 기기.
▲ 맥락 인식(Context-aware) : 카메라·마이크를 통해 주변 환경을 감지하고 상황에 맞게 반응.
▲ 음성 중심 인터페이스 : 시각 대신 청각과 공간 인식 중심의 상호작용.
▲ ‘세 번째 기기’ 전략 :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을 대체하지 않고, 그 사이를 메우는 새로운 카테고리.
다만 오픈AI 측은 “제품의 구체적 형태나 작동 방식은 아직 공개할 단계가 아니다”라며 말을 아꼈다. 그만큼 이번 프로젝트는 AI와 인간의 새로운 인터페이스 실험으로서 상징성이 크다.
아이브는 새로운 기기를 “도구이면서 동반자, 기술이면서 감정의 연장선”으로 정의했다.
■ 기술보다 ‘감정’을 설계하는 디자이너
아이브는 “AI는 모두에게 낯설기 때문에 오히려 평등하다”고 말했다. 즉, 오랜 경력이 기술 우위를 보장하지 않는 ‘수평적 혁명’의 시대라는 뜻이다. 이 발언은 기술 엘리트 중심으로 굴러온 실리콘밸리의 오래된 위계를 뒤흔들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코드보다 감수성, 속도보다 성찰이며, 디자인은 기능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의 해방’이며, 인간의 불안·단절·불행을 줄이는 과정이다.
그는 데브데이 마지막 발언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기기가 우리를 더 행복하고, 덜 불안하게 만들길 바랍니다.”
이는 단순한 제품 비전이 아니라, 인류와 기술의 관계를 다시 그리겠다는 선언이었다.
■ 아이브의 두 번째 혁명, ‘손끝’에서 ‘감정’으로
‘아이폰의 설계자’였던 조니 아이브가 이제 ‘AI의 감정 설계자’로 돌아왔다.
2007년, 그는 인간의 손가락을 기술의 언어로 바꿔 세상을 움직였다. 2025년, 그는 인간의 감정을 AI의 언어로 바꾸려 한다.
그의 다음 기기는 아직 보이지 않지만, 세상을 또 한 번 움직이게 할 그날을 모두가 기다리고 있다.
신주백 기자 jbshin@kmjournal.net
- [오픈AI 데브데이25] ①“챗GPT, 기업용 AI 플랫폼으로 진화”… 오픈AI, 엔터프라이즈 시장 재공략 선언
- [오픈AI 데브데이25] ②“AI가 일하는 동료로”… 오픈AI, 기업 자동화용 ‘에이전트 키트’ 공개
- [오픈AI 데브데이25] ③“AI가 코드를 짜고, 영상을 만든다”… GPT-5 Pro·Sora 2·CodeX가 여는 새로운 산업 혁신
- 오픈AI, 차세대 AI 기기 개발 ‘난항’…데브데이 2025서 해법 제시할까
- “스크린도 버튼도 없다”...조니 아이브·올트먼의 AI 기기, 실루엣 드러났다
- “오픈AI 데브데이 2025, 스타트업의 무기가 사라졌다”...챗GPT, 글로벌 AI 운영체제로 부상
- 오픈AI, 서울서 GPT-5.1 전격 공개… 적응형 추론·개인화 톤까지 ‘차세대 업데이트’ 총집합
- 오픈AI, 서울 데브데이 첫 개최…한국 개발자 생태계 전면 조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