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추얼 아이돌 블리즈 리더 윤이제 인터뷰
"윤이제는 어떤 사람일까?"
지난 6월 블리즈가 단독 콘서트를 열겠다고 발표했을 때 든 생각이었다. 4인조 여성 버추얼 아이돌 그룹 블리즈(윤이제, 나나링, 문모모, 이레인)는 버추얼 씬에서 독특한 포지셔닝을 갖고 있다. 2023년 11월 브이넥서스 소속 기업세로 데뷔했다가 이듬해 6월 개인세로 바뀐 것. 브이넥서스와 블리즈가 합의 하에 계약을 종료했으니 문제될 것은 없었다. 다만 갓 데뷔한 그룹이 소속사 없이 활동할 수 있겠냐는 반응이 많았다. 인터넷 방송을 주로 하는 스트리머로 남겠거니 싶었다.
이러한 생각이 틀렸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블리즈는 버추얼 아이돌로 보란 듯이 성장하고 있다. 올해 1월에는 오리지널 앨범 제작을 위한 펀딩을 진행했다. 목표 금액의 5배인 3,500만 원을 모아 첫 싱글 'Harder'를 발매했다.
지난달에는 단독 콘서트 '판도라'도 개최했다. 온라인이 아니라 케이팝 아이돌과 같은 오프라인 콘서트였다. 놀라운 행보의 중심에는 리더 윤이제가 있었다. 그를 알기 위해 전화 인터뷰를 요청했다.
어른미 가득한 윤이제
"010-XXXX-XXXX"
인터뷰를 약속한 시간에 걸려온 전화를 보고 놀랐다. 보통 버튜버들은 빨간약 노출을 꺼려 전화번호를 공개하지 않는다. 발신자 표시 제한을 걸거나 디스코드를 선호한다. 윤이제는 "발신자 번호를 어떻게 숨기는지 모른다"며 "기자님인데 뭐 어떠냐"고 웃었다.
윤이제에게서는 노련한 어른미가 느껴졌다. 인터뷰라서 긴장하는 기색은 없었다. 충분한 시간을 할애했으니 무엇이든 물어보라고 했다. 일반인이 모르는 버추얼 용어를 말할 때는 친절한 설명도 곁들였다. 사회 생활을 해본 티가 났다.
윤이제는 그런 자신을 두고 "오히려 방송에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버추얼은 조금 더 귀여운 구석이 있어야 하는데 (저는 그렇지 못하다)"라며 "그래서 제 방송을 보고 좋아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수익이 나지 않아도 콘서트를 하는 이유
윤이제에게 소속사도 없이 콘서트를 진행하기 어렵지 않았냐고 물었다. 그는 의외로 덤덤했다. "사실 회사에 있을 때도 저희가 실무를 많이 했다"며 "직원들도 버추얼 아이돌에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연스레 저희가 미팅이며 행사를 주도하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윤이제는 브이넥서스에 대한 고마움을 강조했다. "당시 버추얼은 회사의 주요 사업이 아니었다. 웹툰이나 굿즈 등을 다뤘는데 저희가 성장에 목말라있는 모습을 보고 계약 종료를 먼저 제안해 주셨다. IP도 보통 회사에 귀속되는데 저희에게 주셨다. 정말 감사한 분들"이라고 말했다.
이어 소속사를 대신해서 콘서트에 도움을 주신 분들이 많다고 했다. "SOOP에서 활동하는 '어둠우주기사'라는 분이 계신다. 버추얼 종사자는 아니지만 음악이며 마케팅 일을 하는데 협업을 제안해 주셨다. 이번 콘서트는 물론이고 오리지널 곡 발매와 청백가요대전 등 굵직한 프로젝트에서 계속 도움을 주셨다"라며 "은인 같은 분"이라고 말했다.
콘서트 준비 과정을 설명할 때 윤이제의 목소리는 들떴다. "무대며 의상이며 전부 0에서부터 시작했다"며 "여러 작업자분과 같이 살다시피 하면서 어떤 레퍼런스를 바탕으로 어떤 무대를 만들지 등을 회의했다. 힘들었지만 정말 재미있었다. 대학교 졸업작품을 준비하는 느낌이랄까"라며 웃었다.
윤이제는 버추얼 아이돌이 현실적으로 음악 활동을 하기 어려운 이유도 설명했다. "저희보다 뛰어난 실력을 가진 '아이돌'이 많음에도 '스트리머'에 머무는 분들이 많다"며 "앨범이나 콘서트로는 수익을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음악보다 인방을 주로 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말했다.
블리즈의 콘서트는 신촌 스페이스 일러스타서 진행됐다. 300개 좌석은 매진됐고 콜라보 카페도 운영했다. 충분히 성공한 것으로 보였기에 수익을 내지 않았냐고 물었다. 윤이제는 "전혀 내지 못했다. 낼 수가 없는 구조"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콘서트로 수익을 내려면 말도 안 되게 질을 낮춰야 한다. 최대한 사람을 적게 쓰고 온라인으로만 송출하며 굿즈를 많이 팔아야 한다. 저희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병행했다. 오프라인은 대관, 조명, 음향 등 생각보다 비용이 많이 든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콘서트를 강행한 이유는 뭘까. 윤이제는 "팬들을 위해서. 콘서트는 2만 퍼센트 팬들을 위해서 하는 것"이라며 "버추얼이지만 팬들이 무대를 현실감 있게 즐길 수 있도록 제작비를 아끼지 않았다"고 말했다.
저희는 정말 음악을 하고 싶어요
윤이제와 블리즈의 하반기 계획을 물었다. 역시 음악 얘기가 나왔다. 윤이제는 "한동안 블리즈 단체 곡에 집중하느라 개인 곡을 작업하지 못했다"라며 "지난달 멤버 문모모가 싱글 '미러'를 발매했는데 저를 포함한 다른 멤버들도 개인 곡을 작업할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새로운 소속사가 필요하다고도 말했다. "콘서트를 준비하면서 개인 방송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챙겨야 할 업무가 많았기 때문"이라며 "앞으로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할 텐데 제가 오롯이 감당하기 어렵다. 함께 성장하고 싶은 회사가 있다면 연락 달라"며 웃었다.
블리즈에 관심이 있을 버추얼 제작사들에 한 마디 해달라고 부탁했다. 윤이제는 "저희는 정말 음악을 하고 싶다. 버추얼에 한정되지 않고 케이팝에 가까운 음악을. 그렇다고 '나는 아이돌이니까 음악만 할 거야'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그동안 저희가 했던 대로 궂은 일이며 콘텐츠 투자며 마다하지 않을 거다"고 어필했다.
기사에 쓸 분량이 충분히 나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자가 인터뷰를 마치려는 찰나에 윤이제는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붙잡았다. 기사에 한 줄이라도 넣어줄 수 있는지 물었다. 무슨 내용인지 묻자 윤이제는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블리즈와 윤이제가 항상 빛날 수 있게 해주는 마독이, 블랑이들 너무 고마워! 너희가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아티스트가 될 테니까 앞으로도 이뻐해 줘! 사랑해!"
권상민 기자 smkwon@kmjourn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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