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지컬 AI로의 전환기, 지능이 ‘몸’을 갖는 순간

2025년 상반기, 인공지능 기술이 또 한 번 큰 전환점을 맞이했다. 단순히 알고리즘이 정교해졌거나 새로운 모델이 등장했다는 수준을 넘어서, 인공지능이 이제는 ‘물리적인 실체’를 갖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AI는 이제 디지털 화면 속을 벗어나 현실 공간 속으로 들어오고 있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흐름을 설명하는 개념이 바로 ‘피지컬 AI(Physical AI)’다.

피지컬 AI는 인공지능이 실제 공간을 인식하고, 그 안에서 움직이며, 일을 수행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단순한 로봇 기술의 확장이 아니다. 대규모 언어모델(LLM), 컴퓨터 비전, 강화학습, 센서, 엣지 컴퓨팅, 로봇 운영체제 등 다양한 기술이 하나로 통합되어야만 구현 가능한 ‘차세대 지능형 시스템’이다. 올해 상반기, 글로벌 주요 기업들이 관련 기술을 잇따라 발표하면서 피지컬 AI는 이제 본격적인 산업화의 초입에 들어섰다.

엔비디아와 구글, AI에 ‘몸’을 부여하다

지난 3월 18일부터 21일까지 열린 엔비디아의 연례 개발자 컨퍼런스 ‘GTC 2025’는 피지컬 AI 시대가 시작됐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기조연설에서 “AI는 이제 세상을 실시간으로 인식하고 움직일 수 있는 존재가 됐다”고 선언하며, 자사의 로보틱스 생태계 구축 계획을 본격화했다.

당시 공개된 ‘코스모스(Cosmos)’는 생성형 물리 환경 모델(World Foundation Models)로, 로봇이 가상 시뮬레이션 속에서 세상의 구조를 학습하고 예측할 수 있도록 만든 기반 기술이다. 이와 함께 발표된 ‘GR00T N1’은 범용 휴머노이드 로봇을 위한 언어모델로, 다양한 하드웨어에 이식 가능한 ‘멀티 플랫폼 에이전트’로 설계됐다.

엔비디아는  지난 3월 NVIDIA Cosmos 월드 파운데이션 모델을 발표했다.  사진=엔비디아 

구글 딥마인드 역시 3월 19일 ‘Gemini Robotics’ 모델을 공개하며 피지컬 AI 경쟁에 본격 뛰어들었다. 이 모델은 자연어로 명령을 이해하고, 시각 정보와 결합해 실제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멀티모달 AI다.

특히 눈에 띄는 점은, 구글이 로봇의 윤리적 행동 기준을 평가하는 새 벤치마크 ‘ASIMOV’를 함께 공개했다는 사실이다. ASIMOV는 위험한 명령을 알아서 거절하고, 맥락을 인식해 상황에 맞게 행동할 수 있는지를 테스트하는 기준이다. 로봇이 인간의 말을 오해하거나 잘못된 방식으로 행동하지 않도록 사전에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구글의 발표는 피지컬 AI가 상업적으로 보급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동작이 정밀한 것만으론 부족하며, 안전성·책임성·설명 가능성 등 사람과 공존하기 위한 조건을 갖춰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산업 현장에 투입된, 피규어AI

로보틱스 스타트업 가운데 가장 주목받고 있는 곳은 단연 피규어AI(Figure AI)다. 이 기업은 지난 5월, 두 번째 인간형 로봇 ‘헬릭스(Helix)’를 공개하며 기술적 완성도와 실제 산업 적용 가능성을 동시에 입증해 보였다. Helix는 사람처럼 걸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물체를 들고 옮기며, 자연어 지시에 반응해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

피규어AI는 현재 미국 내 물류센터에서 로봇을 시범적으로 운영 중이며, 연간 1만 2천 대를 생산할 수 있는 자체 공장도 갖추고 있다. 이 회사에는 오픈AI, 마이크로소프트, 엔비디아, 그리고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조스까지 투자자로 참여해 그 기대감을 더하고 있다.

피규어AI가 추구하는 로봇은 단순히 사람처럼 생긴 외형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들은 실제 산업 현장에서 예외적인 상황에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자율성과, 인간과 협업할 수 있는 사회적 행동 능력을 갖춘 시스템을 지향한다. 단순한 자동화를 넘어, 사람의 일을 함께하거나, 때로는 대체할 수 있는 ‘지능형 노동자’로의 진화를 목표로 하고 있는 셈이다.

기술이 ‘몸’을 갖기 시작했을 때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

피지컬 AI가 기술적으로 진일보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를 둘러싼 사회적·제도적 대비는 그에 걸맞은 깊이로 이뤄져야 한다. 사람이 로봇과 같은 공간에서 함께 생활하거나 일하는 상황이 늘어나는 만큼, 예기치 못한 사고나 위험을 예방하기 위한 규범과 기준이 시급하게 요구된다.

지난 6월 17일, 미국 캘리포니아 주는 ‘AI 정책 보고서’를 통해 피지컬 AI의 오작동이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하며, 안전성 검증, 책임 주체 명확화, 투명성 확보 등을 주요 정책 과제로 제시했다.

유럽연합 역시 AI 규제법(AI Act)을 통해 자율주행차, 의료 AI, 로보틱스 등 고위험 인공지능 시스템에 대한 엄격한 규제를 시행 중이다. 이들은 사전 안전성 평가와 독립 인증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피지컬 AI 역시 이 범주에 포함된다. 규제 수준에 따라 산업 확산 속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향후 법적·제도적 정비가 산업 경쟁력과 직결될 가능성도 높다.

기술의 전환기는 산업이 아니라 사회의 문제다

지금 피지컬 AI는 단순히 새로운 기술이 아니라, 기술이 인간 사회 안으로 들어오는 첫 번째 물리적 실험이다. 이전까지 AI가 말을 하고 그림을 그렸다면, 이제는 걷고, 만지고, 행동하는 존재로 변하고 있다.

이러한 기술은 단지 ‘얼마나 정밀한가’를 넘어서, 얼마나 안전하고, 얼마나 책임 있게 작동하며, 인간과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동반한다. 앞으로의 인공지능은 말을 잘하는 존재를 넘어서, 행동을 잘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기술은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고, 이제 그 움직임이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선택하고 조정해야 할 시간이다.

신주백 기자  jbshin@kmjourn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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