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 AI와 피지컬AI가 던지는 '사무직과 노동직'의 이중 충격
2025년 6월, 인공지능은 더 이상 눈에 보이지 않는 코드나 알고리즘의 형태로만 머무르지 않는다. 대화형 AI가 사무직 업무의 일부를 흡수한 데 이어, 이제는 피지컬 AI가 산업 현장의 육체노동까지 대체하고 있다.
인공지능이 ‘머리’를 지나 ‘몸’까지 갖게 되면서, 노동시장은 지식노동과 현장노동 모두에서 동시다발적인 충격을 받는 초유의 이중 전환기를 맞고 있다.
생성형 AI는 사무직을, 피지컬 AI는 육체노동을 흔든다
불과 1~2년 전만 해도 인공지능의 영향은 주로 사무직에 국한되어 있었다. 대화형 AI는 문서 요약, 회의록 작성, 마케팅 문안, 번역, 법률 검토 초안 작성 등 일상적인 ‘화이트칼라 업무’를 빠르게 대체했다. 이 과정에서 경력 초년생, 비정규직, 외주 인력을 중심으로 한 일자리가 감소하거나 구조조정의 전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제 주목해야 할 흐름은 피지컬 AI에 의한 블루칼라 노동 재편이다. 피규어(Figure) AI가 개발한 인간형 로봇 ‘헬릭스(Helix)’는 물류센터 현장에서 걷고, 들고, 말하는 기능을 갖췄다. 자연어 지시를 이해하고, 작업 환경에 따라 판단까지 내릴 수 있는 이 로봇은 이미 미국 일부 물류창고에서 시범 운영되고 있다. 이는 단순 반복 작업뿐 아니라, 점차 상황 대응 업무까지 로봇이 대체하기 시작했다는 분명한 신호다.
OECD 보고서: “AI는 중간기술직·현장노동을 최대 35%까지 대체할 수 있다”
국제기구들도 이러한 흐름을 경고하고 있다. OECD는 2025년 4월 발표한 ‘AI와 미래 일자리 보고서(OECD, Artificial Intelligence and the Future of Work, 2025.4.11)’에서 피지컬 AI 확산으로 인해 “향후 10년 이내 제조업, 물류, 건설, 의료보조 분야에서 중간기술직과 단순노무직의 최대 35%가 구조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보고서는 AI 기술 도입 속도가 빠른 국가일수록 노동 재편의 파급이 더 급진적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하며, 정부의 선제적 정책 개입 없이는 고용 불안정이 사회 전체로 전이될 수 있음을 경고했다.
한국 사회가 특히 취약한 이유
문제는 한국이 이 같은 구조 변화에 매우 취약한 사회경제적 조건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첫째, 한국은 중소 제조업 기반이 여전히 견고하지만, 고령화와 인력난으로 인해 자동화 유인이 매우 높다. 실제로 일부 중견 물류기업은 외산 로봇 도입을 검토 중이며, 스마트 팩토리 확대 정책도 피지컬 AI 수요를 빠르게 키우고 있다.
둘째, 한국 사무직의 상당수는 여전히 루틴화된 문서·보고·기획 중심 구조에 머물러 있다. 이 때문에 생성형 AI 도입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으며, 특히 지방 중소기업, 공공기관, 교육 서비스 직군에서는 GPT 계열 모델의 활용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셋째, 재교육 시스템의 구조적 한계가 문제다. 경직된 고용시장, 민간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교육 부담, 연령차별적인 직무 배치 관행은 직업 전환과 재훈련을 어렵게 만든다. AI가 일자리를 흔드는 속도에 비해, 이 변화에 대응할 사회적 완충 장치는 거의 없다.
기술과 싸우지 말고, 기술을 조정할 준비를 해야 한다
노동시장에 드리운 AI발(發) 불안은 단순히 기술 그 자체가 위험해서가 아니다. 문제는 기술 도입이 사회적 합의 없이, 효율만을 기준으로 일방 추진되고 있다는 점에 있다.
피지컬 AI가 산업 현장의 노동을 대체하는 흐름이 불가피하다면, 그 과정에서 사람이 할 수 있는 역할을 어떻게 새롭게 정의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반복 작업만이 노동의 전부는 아니다. 인간은 비정형 상황에 적응하고, 동료와 협력하며, 윤리적 판단과 책임을 수행할 수 있는 존재다. AI는 일을 처리할 수는 있어도, 관계를 맺을 수는 없다.
정부가 주도해야 할 '전환의 설계'
피지컬 AI는 단순한 기술 진화가 아니다. 그것은 기술이 사회 구조를 어떻게 바꾸는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이며, 동시에 우리 사회가 그것을 어떻게 재설계할지를 묻는 기회이기도 하다. 산업 자동화가 효율만을 기준으로 속도를 높일 때, 피해는 가장 취약한 노동자에게 집중된다. 기술 혁신은 선택일 수 있지만, 그 결과를 사회에 어떻게 분배할지는 분명히 정책의 영역이다.
현재 한국 정부는 AI를 반도체·데이터·산업 육성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그러나 피지컬 AI 확산이 현실이 된 지금, 기술 경쟁력만으로는 부족하다. 기술과 노동이 동시에 재편되는 전환기에는 ‘일의 본질’에 대한 새로운 정의와 전략이 필요하다.
정부는 이제 ‘사람이 기술을 능동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역량’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답해야 한다. 단순한 교육 예산 확대나 일자리 수 확보를 넘어, AI로 대체될 수 있는 업무를 분석하고, 그로부터 파생되는 새로운 직무를 제도화해야 한다. 동시에 산업 현장에서의 AI 도입이 사회적 갈등 없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노동자·기업·정부가 함께 참여하는 ‘전환 협약’ 모델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의 기술 중심 국가전략을 ‘인간 중심 전환 전략’으로 이동시키는 일이다. AI 시대의 진정한 국가경쟁력은 기술을 가장 먼저 개발한 나라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기술 변화 속에서도 사람을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든 나라에서 나올 것이다. 기술은 이미 움직이고 있다. 이제 정부와 사회가 함께, 그 움직임의 방향을 정해야 할 차례다.
테크풍운아 칼럼니스트 scienceaza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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