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과 보어아웃 사이에서
누구나 일을 하며 기쁠 때와 슬플 때가 있다. 다양한 성장 경험 속에서 진화 중인
우리 시대 스마트워커를 위한 나침반이 되길 바라며.
정신없이 바쁘거나, 따분하게 지루하거나 – 당신은 무엇을 원하는가?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를 만큼 바쁠 때가 있다. 회의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슬랙과 카톡이 여기저기 울린다. 띄워 놓은 창이 수십개라서 한번 닫으면 어디서 다시 열어야 할지 구분도 못 할 지경이다.
그런데 또 어떤 날은, 할 일이 있긴 한데 굳이 안 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고, 커피잔을 부여잡은 채 모니터만 멍하니 바라보게 된다.
바쁠 때는 탈진, 한가할 때는 무기력. 어쩌면 우리는 이 둘 사이를 줄타기하며 일하는 중인지도 모른다.
“당신은 바쁜 게 좋습니까, 아니면 여유로운 게 좋습니까?”
이 질문에 많은 이들이 이렇게 답한다. “적당히 바쁜 게 좋죠.” 하지만 그 ‘적당함’이라는 균형은 생각보다 실현되기 어렵다. 왜일까?
‘정신없이 바쁨’은 외부에서 몰려온다. 누군가의 요청, 촉박한 마감, 갑작스러운 보고. 내 의지와는 별개로 일이 나를 덮친다. 반면 ‘지루함’은 내부에서 스멀스멀 올라온다.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일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몰입(flow)의 조건으로 “과제의 난이도와 나의 능력이 적절히 만날 때”를 꼽았다. 너무 쉬우면 지루하고, 너무 어려우면 불안하다. 즉, 몰입은 ‘일의 양’이 아니라 ‘일의 설계’에서 시작된다는 뜻이다.
이제 우리는 AI와 함께 일하는 시대에 들어섰다. 단순 반복 업무는 이미 자동화되고 있고, 보고서 요약, 시장조사, 콘텐츠 아이디어까지 챗GPT가 거들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건, ‘할 일의 양이 줄어들수록 일의 의미는 더 분명해야 한다’는 점이다. AI가 대신할 수 없는 영역은 바로 ‘왜 이 일을 하는가’를 설계하고 ‘무엇을 위해 이 방향으로 갈 것인가’를 정의하는 일이다. AI가 일하는 방식을 바꿨다면, 우리는 일의 맥락을 정의하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
그래서 현대의 스마트워크는 단지 재택근무나 협업툴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시간이 기술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고, 어떤 목적에 기여하고 있는가”를 자각하는 능력이다. 기계는 효율을 주지만, 의미는 여전히 인간의 영역이다.
진화심리학자 데이비드 버스는 인간은 끊임없이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존재라고 말한다. ‘내가 누구에게 어떤 쓸모가 있는가’에 따라 우리의 자존감과 생존전략이 달라진다. 즉, 인간은 의미를 먹고 산다.
그래서 리더든 구성원이든 이 질문은 꼭 필요하다. “나는 지금 어떤 의미의 시간을 살고 있는가?” 지루한 일이라도, 그 일이 결국 어떤 변화를 만들어내는지를 이해하고 있다면 우리는 잘 버틴다. 바쁜 일이라도, 그 이유를 모르고 있다면 금세 지치고 만다.
결국 우리가 원하는 건 단순한 여유도, 끝없는 몰입도 아닌, ‘내가 동의할 수 있는 의미로 채워진 시간’이다. AI가 아무리 똑똑해져도, 그 시간의 방향은 여전히 당신이 정해야 한다. 지나친 바쁨은 번아웃을 부르고, 지나친 지루함은 보어아웃을 부른다. 두 극단 사이에서, 의미가 당신을 지켜줄 것이다.
휴가철이다. 많은 직장인들이 소중한 재충전의 시간을 통해 작더라도 소중한 본인만의 의미를 발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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