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은 AI가 보지만, 환자는 여전히 사람이 본다”

이미지=구글 제미나이 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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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열풍은 계속되지만… AI가 바꾸는 의료의 풍경

한국 사회에서 의사는 여전히 최고의 직업으로 손꼽힌다. 안정적인 수입, 높은 사회적 지위, 은퇴 후 진로까지 보장되는 전문직으로, 부모들은 자녀의 미래를 위해 초등학교 시절부터 ‘의대 로드맵’을 설계한다. 사교육 시장에서도 의학계열 대비반은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인기 있는 강좌 중 하나다.

그러나 AI 기술이 빠르게 의료 현장에 도입되면서 ‘의사가 된다’는 목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시대가 오고 있다. 단순히 진단 정확도를 높이는 수준을 넘어, AI는 의사의 역할 자체를 재정의하고 있다.

진단은 AI가, 신뢰는 인간이 책임지는 시대

서울대병원과 세브란스병원은 폐암과 피부암 진단에 AI를 도입했고, 미국 메이요클리닉은 심장질환 조기 발견에 AI 분석 시스템을 활용한다. 단백질 구조 예측 AI ‘알파폴드’는 의학 연구의 혁신으로 평가받는다. 영상 판독, 패턴 인식, 질병 위험 예측 등에서는 이미 AI가 숙련된 전문의를 능가하는 정확도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AI는 환자의 감정을 읽지 못한다. “양성 가능성 92%”라는 숫자 뒤에는 불안과 두려움을 안은 환자의 눈빛이 있고, 그 순간 필요한 것은 기술이 아닌 ‘설명과 공감’이다. AI는 병을 진단하지만, 의사는 환자의 삶 전체를 본다. 앞으로 의사의 역할은 단순히 병을 고치는 기술자가 아니라, 신뢰를 설계하는 커뮤니케이터가 되어야 한다.

간호사도, 약사도 ‘인간성’이 생존 전략이다

AI의 도입은 간호사, 약사 등 의료 전 분야에 영향을 미친다. 이미 일본과 싱가포르 일부 병원에서는 로봇 간호사가 기본적인 투약과 체온 측정을 수행하고 있다. 환자의 혈압, 맥박, 산소포화도는 AI 기반 모니터링 시스템이 실시간으로 측정하고 경고까지 한다.

그러나 불안을 느끼는 환자의 손을 잡아주고, 가족에게 환자의 상태를 설명하며, 회복을 위한 정서적 지지를 제공하는 일은 여전히 인간만이 할 수 있다.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케어링’과 현장 판단 능력은 앞으로 간호사의 핵심 생존 전략이 될 것이다.

시험만 잘 보면 되는 시대는 끝났다

이제 질문은 바뀌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의대에 갈 수 있을까?’가 아니라, ‘AI 시대에 어떤 의사가 될 것인가?’다. AI는 이미 방대한 의학 지식과 정확한 진단 능력을 갖췄다. 인간 의사가 경쟁력을 가지려면, 데이터를 해석하고 환자 맞춤형 설명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하며, 환자의 가치관과 삶의 조건을 반영한 윤리적 중재자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따라서 의사가 되기 위한 교육도 변화가 필요하다. 문제를 푸는 훈련보다 중요한 것은 데이터 리터러시, 환자 경험 관리 능력, 공감과 윤리적 판단력이다. 기존의 입시 사교육 중심 교육으로는 미래 의료의 리더를 길러낼 수 없다.

AI가 묻는다, “당신이 제공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AI는 의사의 자리를 빼앗기 위해 등장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 의사의 존재 이유를 더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다. 진짜 질문은 이것이다. “당신이 의사로서 제공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과거에는 그 답이 지식과 기술이었다면, 이제는 신뢰와 공감이다.

진단은 AI가 한다. 그러나 치료는 인간의 몫이다. 삶을 이해하고, 감정을 읽고, 함께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람. 그런 전문가만이 AI 시대에도 진짜 의사로 살아남는다.

금몽전 기자  kmj@kmjourn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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