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변호사·회계사·약사, 과연 AI 시대에도 안전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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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시대 대치동의 미래는 어떻게 변할까? / 이미지=구글 제미나이 생성
AI시대 대치동의 미래는 어떻게 변할까? / 이미지=구글 제미나이 생성

우리 아이는 의사 시킬 거예요

한국 사회에서 학부모들이 가장 선호하는 자녀의 직업은 여전히 의사, 변호사, 회계사, 약사다. 안정적인 직업과 고소득이 보장될 것이라는 믿음은 수십 년 동안 변하지 않았고, 이는 사교육 시장의 핵심 동력으로 작용해왔다. 대치동과 같은 사교육 중심지에서는 초등학생 대상 의대 입시반, 중학생 대상 로스쿨 논술반, 고등학생 대상 수능 특강과 면접 준비반이 이어진다. 대학 입학 이후에도 회계사와 변호사 시험을 준비하는 전문직 사교육은 계속된다.

전문직을 향한 이 열망의 배경에는 부모 세대의 경험이 자리 잡고 있다. 기업의 수명이 짧아지고 청년 실업이 보편화된 사회에서, 전문직은 여전히 취업률이 높고 사회적 지위가 보장된다는 인식이 강하다. 그래서 많은 부모들은 사교육을 단순한 투자보다 ‘미래를 위한 보험’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AI는 전문직을 ‘성역’에서 끌어내렸다

오랫동안 의사, 변호사, 회계사, 약사는 자동화의 영향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성역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은 이 믿음을 정면으로 뒤흔들고 있다.

의료 현장에서는 AI가 암과 심장질환을 조기에 진단하며, 일부 진단 분야에서는 인간 의사보다 높은 정확도를 기록하고 있다. 법률 시장에서는 ‘로보로이어’가 계약서 작성과 판례 검색을 자동화하며, 단순 민사 소송 업무의 상당 부분을 대체하고 있다. 회계 및 세무 분야에서는 SaaS 기반의 자동화 솔루션이 확산되면서, 단순 기장이나 정산은 인간보다 빠르고 정확한 AI가 처리하고 있다. 약국에서도 원격 조제 시스템과 조제 로봇이 실험적으로 도입되었으며, 인간 약사의 역할은 복약지도와 생활 상담에 국한되는 추세다.

이러한 변화는 전문직이 더 이상 자동화의 예외가 아님을 보여준다. 인간의 전문성이 AI 앞에서 도전받고 있는 시대다.

사교육은 왜 이 현실을 외면할까?

사교육 시장은 여전히 AI가 가져온 구조적 변화를 외면한 채 과거의 ‘정답 경로’를 반복하고 있다. 현재의 교육 구조는 여전히 수능 성적, 논술 점수, 자격시험 합격률 같은 전통적인 지표에만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역량은 향후 10년 안에 AI가 대체할 가능성이 높은 영역들이다.

미래 사회에서는 문제를 얼마나 빠르게 푸는가보다, 어떤 문제를 정의하고 누구와 어떻게 협업해 해결하느냐가 더 중요한 능력으로 평가받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교실과 학원은 여전히 정답 중심, 암기 중심 교육에 머물러 있으며, 데이터 해석, 창의력, 비판적 사고, 공감 능력 등 인간 고유의 역량은 외면되고 있다.

아이들을 ‘AI보다 못한 인간’으로 길러내는 이 교육 시스템은, 결국 스스로 미래를 불확실하게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전환이 요구된다.

‘안정’이라는 믿음이 가장 불안한 선택

부모들의 불안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불확실성이 클수록 사람들은 더 안정적인 경로를 선택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현재 가장 인기 있는 직업들이 AI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역설적 현실을 보여준다.

전문직은 안정적인 선택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변화의 최전선에서 자동화와 직접적으로 경쟁하고 있다. 단순 반복 업무를 수행하던 전문직 종사자들은 이미 알고리즘에게 역할 일부를 넘기고 있으며,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들은 도태될 위험에 처해 있다.

안정을 기대했던 선택이 오히려 가장 불안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문직=미래 보장’이라는 공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진짜 필요한 역량은 따로 있다

AI 시대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지식이 아니다. 정보를 처리하고 문제를 풀 줄 아는 능력은 이제 기계가 더 잘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대신 인간에게 요구되는 것은 데이터를 해석하고, 문제를 정의하며, 다양한 주체와 협업할 수 있는 역량이다.

여기에 더해 공감 능력, 윤리적 판단력, 맥락 이해력 같은 비인지적 역량 역시 중요해진다. 이는 AI가 쉽게 모방하거나 대체하기 어려운 부분이며, 인간 고유의 경쟁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따라서 사교육은 이제 시험 점수 향상을 넘어, 인간다움을 키워주는 방향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지금처럼 ‘의대 보내기’에만 집중하는 교육은, 오히려 아이들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미래를 대비하는 교육은 전문직 자격증 취득이 아니라, AI와 공존하는 인간의 역할을 정립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진짜 질문은 이제부터다

AI 시대에 전문직이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면, 우리 사회와 학부모가 던져야 할 질문은 달라져야 한다. 단순히 아이를 의사로 만들 수 있는가가 아니라, AI와 공존하며 인간답게 일할 수 있는 사람으로 키울 수 있는가가 핵심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성적이나 시험 점수가 아니다. 문제를 이해하고, 사람과 협력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인간 고유의 능력이 진짜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사교육 공화국’이 다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교육의 목적과 방향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다.

금몽전 기자  kmj@kmjourn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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