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 지식은 AI가, 정의와 설득은 인간이”
대한민국 사교육의 또 다른 종착역, 법조인
의대 다음으로 학부모들이 선망하는 진로는 단연 법조계다.
로스쿨 제도 도입 이후 학원가는 ‘법학 논술반’, ‘로스쿨 대비 토론반’ 개설에 열을 올렸고, 많은 부모들이 아이를 변호사나 판사로 키우고 싶어 한다. 안정된 고수입, 사회적 지위, ‘정의’라는 상징까지 갖춘 법조인은 여전히 매력적인 목표다.
그러나 이 화려한 타이틀도 AI 시대 앞에서는 더 이상 절대 안전지대가 아니다.
AI 변호사의 등장, 현실이 되다
이미 해외에선 ‘로보로이어(Robo-lawyer)’가 활동 중이다.
미국의 한 스타트업은 교통위반 재판에서 AI가 피고인의 귀에 실시간 변론 전략을 제시하는 시범 서비스를 운영했고, 또 다른 플랫폼은 소액 소송, 임대차 계약, 이민 서류 등 일상적 법률 문제를 자동 처리한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계약서 자동 생성, 판례 검색, 법률 상담 챗봇 등 AI 기반 서비스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단 몇 초 만에 수십 년치 판례와 법령을 분석해내는 AI의 능력은 인간 변호사의 경험과 속도를 압도한다.
반복 업무는 기계로, 판단은 인간으로
법조계에서 AI가 가장 빠르게 대체하는 영역은 표준화된 반복 업무다.
계약서 작성, 상표 출원, 간단한 민원 대응은 AI가 더 빠르고 저렴하게 처리한다. 과거에는 시간당 수십만 원을 줘야 했던 법률 서비스가 이제는 몇 만 원, 혹은 무료로 해결된다.
그러나 법조인이 완전히 사라지는 일은 없다.
법조인의 본질은 ‘법을 아는 사람’이 아니라, 그 법을 상황에 맞게 해석하고, 갈등을 조정하며, 사람을 설득하는 전문가다. 기계는 조항을 대입할 수 있지만, 인간은 맥락을 읽고, 윤리를 반영하고, 정의를 구현한다.
AI 시대의 경쟁력은 ‘암기’가 아닌 ‘설득’
AI는 법률 문서를 작성하고 판례를 찾아줄 수 있지만, 그 결과를 이해관계자에 맞게 전략화하고 해석하는 능력은 인간의 몫이다.
미국 대형 로펌들은 AI를 도입하면서도 오히려 ‘전략적 사고’, ‘협상 능력’, ‘윤리 감수성’을 갖춘 변호사를 더욱 선호한다.
법조인의 경쟁력은 이제 ‘누가 더 많은 판례를 아는가’가 아니라, ‘누가 더 잘 설득할 수 있는가’로 이동하고 있다.
판사의 역할도 재정의된다
일부 국가는 경미한 사건에 대해 AI 판사의 시범 도입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최종 판결은 여전히 인간 판사가 내린다.
법률 적용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판결은 단순한 알고리즘이 아니라, 사회적 합의와 인간적 정의감이 함께 작동하는 복합적 판단이다.
숫자와 데이터로는 설명되지 않는 복잡한 윤리 문제, 감정의 균형, 사회적 맥락은 AI가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 고유의 영역이다.
지금의 로스쿨 사교육, 무엇이 문제인가
현재 한국의 로스쿨 진학 중심 사교육은 여전히 암기 위주다.
수많은 법령 조항, 판례를 외우고 문제를 푸는 연습에 몰두하지만, AI는 이미 그 모든 지식과 정보처리에서 인간을 앞선다.
이제 필요한 것은 ▲문제를 재구성하는 비판적 사고 ▲다중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협상력 ▲설득을 이끄는 커뮤니케이션 ▲사회적 신뢰를 쌓는 윤리적 판단이다.
즉, 법을 ‘아는 사람’이 아니라, 법을 ‘활용하는 사람’을 기르는 교육이 필요하다.
데이터 리터러시와 인간다움의 결합이 미래 법조인의 조건
앞으로 법조인은 AI를 이해하고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데이터 리터러시는 필수이며, 동시에 공감력, 협상력, 언어력, 윤리 판단력이 미래 경쟁력을 만든다. 법조계의 미래는 단순한 법률 서비스 제공자가 아니라, 전략가·협상가·윤리적 중재자로서의 인간 법조인을 요구한다.
지금 아이들이 받아야 할 교육은 로스쿨 입학을 위한 문제풀이가 아니라, 토론과 글쓰기, 협상과 공감 훈련이다.
AI는 ‘법’을 알지만, ‘정의’를 세우진 못한다
법은 인간 사회의 질서를 세우기 위한 도구이며, 법조인의 본질은 데이터가 아니라 사람, 조문이 아니라 정의다. AI는 법을 빠르게 해석할 수는 있지만, 정의를 실현하는 주체는 결국 인간이다.
따라서 AI 시대에도 법조인이란 직업은 살아남을 수 있다. 다만 그 존재 방식은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
법을 넘어서 사람을 보고, 조항 너머의 삶을 이해하는 것. 그것이 앞으로도 변호사와 판사를 법조인답게 만드는 최후의 무기다.
금몽전 기자 kmj@kmjourn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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