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은 끝났다, 스토리와 전략만이 살아남는다”

이미지 = imageFX 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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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열풍은 여전하지만… AI가 바꾸는 계산의 풍경

대한민국에서 법·의학계 다음으로 인기 있는 전문직이 회계사와 금융인이다. 공인회계사 시험에는 매년 수만 명이 도전하고, 금융권 취업은 청년들의 최우선 목표로 꼽힌다. 부모들이 아이에게 회계사와 금융인을 권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숫자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안정된 직업, 높은 보수, 그리고 사회적 신뢰가 그 배경이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이 분야를 흔들고 있다. 단순 계산과 기계적 분석은 이미 AI가 더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한다. 이제는 숫자 자체가 아니라, 숫자 속의 의미를 해석하는 능력이 인간 전문가의 생존 전략으로 떠올랐다.

회계사, 장부 작성가에서 의미 해석가로

회계 분야의 자동화는 이미 현실이다. 글로벌 기업들은 클라우드 기반 회계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기장과 정산을 자동화한다. 한국에서도 스타트업과 대기업이 앞다투어 인공지능 세무 솔루션을 출시하고 있다. 단순 회계 처리, 세금 신고, 장부 정리는 기계가 더 정확하고 신속하게 수행한다. 과거 회계사들이 몇 주를 들여야 했던 감사 보고서 초안도 AI는 몇 시간 만에 완성한다.

하지만 회계사의 역할은 단순 계산이 아니다. 앞으로는 숫자 뒤의 맥락을 읽고, 기업 전략을 제시하며, 이해관계자를 설득하는 능력이 더 중요해진다. AI가 “매출이 하락했다”는 사실을 말해줄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이 경기 침체 때문인지, 사업 구조의 문제인지, 경영자의 비전 부족 때문인지는 인간 전문가의 해석이 필요하다.

금융인, 데이터 분석가에서 전략 설계자로

금융권의 변화는 더 극적이다. 투자은행과 자산운용사는 이미 AI 기반 투자 전략을 운용하고 있으며, 초단타 매매는 인간이 따라갈 수 없는 속도와 정밀도로 실행된다. 리서치 보고서 작성, 시장 예측, 종목 분석도 자동화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단순히 데이터를 모으고 정리하는 금융 애널리스트의 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렇다고 금융인이 필요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 금융인의 경쟁력은 데이터를 해석해 의미를 만들고,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전략을 제시하는 능력에 있다. 투자자와 기업을 설득하고, 사회적 흐름까지 고려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힘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사교육의 함정, 문제 풀이에 갇히다

문제는 한국의 사교육 현실이다. 회계사 시험 대비반과 금융권 취업 대비 학원은 여전히 공식 암기, 세법 조항 암기, 기계적 문제 풀이에 집중한다. 하지만 이런 영역은 이미 AI가 더 잘한다. 아이들이 진짜 배워야 할 것은 숫자를 넘어 이야기를 만들고, 데이터를 넘어 전략을 설계하는 힘이다.

AI 시대, 회계사와 금융인에게 필요한 세 가지

첫째, 데이터 리터러시다. AI가 제시한 수치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한계와 편향을 간파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스토리텔링 능력이다. 재무제표와 분석 결과를 맥락 속에서 풀어내고, 기업과 투자자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해야 한다.

셋째, 전략적 사고다. 불확실한 환경 속에서도 최적의 결정을 내릴 수 있는 판단력이야말로 인간 전문가의 진정한 가치다.

계산은 AI가 한다, 의미는 인간이 만든다

AI 시대, 회계사와 금융인은 종말을 맞는 것이 아니라 정체성을 재구성해야 한다. 계산은 이미 끝났다. 이제 중요한 것은 해석이다. 숫자는 AI가 처리하지만, 그 속에서 의미와 전략을 뽑아내는 일은 인간만이 할 수 있다.

아이들이 회계사와 금융인을 꿈꾼다면, 사회가 준비해야 할 교육은 시험 대비식 암기가 아니라 데이터 해석력·스토리텔링·전략적 사고를 기르는 경험이다. 결국 AI가 계산을 대신하는 시대에도, 진짜 금융 전문가는 숫자에 생명을 불어넣는 사람이다.

금몽전 기자 kmj@kmjourn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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