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은 계산으로 짤 수 있어도, 신뢰는 사람만이 만든다”
엘리트 진로, 그러나 AI가 먼저 파고든 영역
대한민국의 사교육 열풍은 의대·로스쿨·회계사 시험 준비에 집중되어 있지만, 그 밖에서도 ‘엘리트 진로’라 불리는 영역이 있다. 바로 정치와 외교다. 국제고, 외고, 정치외교학과는 여전히 상위권 학생들의 선택지로 각광받는다. 부모들은 자녀가 국제무대에서 협상력을 발휘하고, 국내 정치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래를 꿈꾼다.
그러나 AI 시대에도 정치인·외교관은 여전히 매력적이고 안정적인 직업일까?
데이터 기반 정책·외교, 이미 현실이 되다
오늘날 정책 수립 과정에는 이미 AI가 깊숙이 들어와 있다.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해 경제 효과를 예측하고 복지 정책의 수혜 대상을 시뮬레이션한다. 선거 전략에서는 빅데이터와 알고리즘을 활용한 유권자 타깃팅이 보편화됐다. 외교 현장에서는 AI가 협상 전략을 시뮬레이션하고 상대국의 반응을 예측한다. 연설문 초안, 외교 문서, 대중 메시지까지도 AI가 초고를 작성한다.
정치·외교 현장의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그러나 본질은 사람을 움직이는 힘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나온다. 정치와 외교의 본질은 무엇인가? 결국 사람의 마음을 얻고 신뢰를 쌓는 힘이다. AI는 수치와 통계를 근거로 분석할 수 있지만, 선거에서 유권자를 설득하고 국가 위기 상황에서 국민을 안심시키며, 외교 현장에서 상대국 대표를 끌어당기는 카리스마는 인간만이 가질 수 있다.
역사를 돌아보면 정치의 향방은 언제나 데이터가 아니라 인물에 의해 결정됐다. 경제 지표가 나빠도 국민을 하나로 모은 지도자가 있었고, 군사력이 열세여도 뛰어난 협상가 덕분에 전쟁을 막은 사례가 있었다. 냉전 시대의 미·소 정상회담, 남북 정상회담 등은 결국 지도자의 태도와 신뢰가 성패를 갈랐다. 정치와 외교는 숫자의 과학이 아니라, 신뢰와 관계의 예술이다.
AI 시대 정치인, 카리스마와 신뢰가 경쟁력
AI가 데이터 분석과 전략 기획을 맡더라도, 대중과 직접 눈을 맞추고 감정을 공유하는 역할은 인간에게 남는다. 유권자는 공약의 계산만 보지 않는다. 그 정치인이 믿을 만한 사람인지, 위기에서 국민을 지켜줄 수 있는 리더인지, 인간적 신뢰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정치의 본질은 결국 사람을 설득하는 능력이며, 이는 진정성과 카리스마에서 비롯된다.
외교관, 문서 기술자에서 신뢰의 교량으로
외교관의 업무도 마찬가지다. 협상 시나리오와 외교 문서는 AI가 작성할 수 있다. 그러나 상대국 대표와의 만남에서 작은 농담 하나, 예기치 못한 제스처 하나가 협상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 이는 기계가 결코 대체할 수 없는 인간적 교류다.
외교관의 가치는 언어 능력이나 협상 기술을 넘어, 상대의 문화와 감정을 존중하며 신뢰를 쌓는 능력에서 나온다. AI는 문장을 번역할 수 있어도, 악수의 온도까지 계산하지는 못한다.
사교육, 지식 암기에서 소통 훈련으로
지금의 정치·외교 관련 사교육은 주로 어학, 논술, 국제 시사 지식 암기에 치중돼 있다. 그러나 뉴스 번역은 이미 실시간 자동화됐고, 국제 정세 분석은 알고리즘이 더 깊이 있게 제공한다. 앞으로 필요한 교육은 단순 지식 주입이 아니라, 데이터를 비판적으로 해석하는 힘, 사람의 마음을 얻는 소통 능력, 윤리적 책임감을 길러주는 과정이다.
정치인·외교관에게 필요한 세 가지 역량
첫째, 데이터 활용 능력이다. 정책과 외교 전략 수립에서 AI의 도움을 받되, 결과를 비판적으로 해석하고 인간적 판단을 더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다. 사실 전달을 넘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메시지를 설계할 수 있어야 한다. 정치와 외교는 결국 메시지의 싸움이며, 그 힘은 진정성에서 나온다.
셋째, 윤리와 신뢰다. 정치·외교는 신뢰 위에 세워지며, 이는 인간적 진정성에서 비롯된다. 국민과 세계 시민에게 신뢰받지 못하는 정치·외교는 AI 시대에도 설 자리가 없다.
결국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답이다
AI 시대에도 정치인과 외교관의 길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무거운 책임이 부여된다. 데이터가 정책을 설계하더라도 국민의 마음을 얻는 것은 인간의 몫이다. 협상 전략이 알고리즘에서 나오더라도, 실제 악수를 나누는 것은 인간의 몫이다.
아이들이 정치인과 외교관을 꿈꾼다면, 지금처럼 지식 암기와 문제 풀이 중심 사교육만으로는 부족하다. 데이터와 기술을 도구로 삼으면서도, 신뢰와 카리스마, 인간다운 책임을 지켜내는 힘을 길러야 한다. AI 시대에도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금몽전 기자 kmj@kmjourn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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