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행사는 브랜드의 진짜 얼굴을 드러낸다

글로벌 빅테크 플랫폼처럼 한국의 대표 플랫폼 기업들도 매년 성대한 발표 행사를 연다.

화려한 무대, 정교한 영상, 사전부터 이어지는 티저 홍보까지. 겉으로 보면 글로벌 테크기업 못지않은 스케일이다. 하지만 막상 무대가 시작되면 묘한 어색함이 따라붙는다. 대본을 읽는 듯한 CEO의 시선, 경직된 몸짓, 관객의 반응 없는 정적. 아무리 완벽하게 준비해도 ‘뭔가 부족하다’는 감각이 남는다.

이는 단순히 개인 발표자의 역량 문제가 아니다.

제품을 기획한 사람, 발표 자료를 만든 사람, 무대를 연출한 사람, 발표 스크립트를 쓴 사람 그리고 발표하는 사람이 따로 분리돼 움직이는 구조에서 비롯된다. 수십일 전부터 홍보영상을 내보내고 기대감을 끌어올려도, 무대 위에서 스크립트를 읽는 프리젠터의 목소리가 어색하게 울리면 모든 공력이 한순간 무너져 버린다. 오히려 공들인 홍보, 잘 차려입은 의상과 헤어스타일 덕에 그 어색함은 더 크게 느껴진다.

AI 시대는 이런 장면을 더욱 도드라지게 만든다.

영상, 이미지, 대본은 이제 AI가 대신 만들 수 있다. 심지어 목소리와 표정까지 합성하는 기술도 어렵지 않다. 그렇다면 관객은 왜 여전히 무대 위의 ‘사람’을 보고 싶어 하는가? AI가 흉내 내지 못하는, 인간만의 매력은 어디에서 드러나는가?

그 답은 즉흥성과 진정성에 있다.

준비된 스크립트가 아니라, 현장에서 느낀 긴장과 설렘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순간. 예기치 못한 질문에 자기 언어로 답하는 대화. 목소리의 떨림과 표정의 변화 속에서 묻어나는 진짜 감정. 이런 요소야말로 AI가 아직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고유한 영역이다.

최근 TV를 보다 우연히 영화 마스터의 한 장면을 다시 보게 됐다.

이병헌이 희대의 사기꾼 조희팔을 연기하며 대중 연설을 하는 장면이었다. 연기라는 걸 알면서도 “정말 발표를 잘한다”라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왜일까? 청중을 바라보는 눈빛과 호흡, 리듬, 손짓 하나까지 사람들의 감정을 고려하며 흘러갔기 때문이다. 몰입은 기술적 화법에서 나오지 않는다. 듣는 사람을 향한 세심한 배려와 진심에서 발생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이 대목에서 최근 열린 if kakao 행사가 겹쳐 보인다.

이미지 = 카카오 if kako 홈페이지
이미지 = 카카오 if kako 홈페이지

카카오는 늘 “편안함과 경쾌함”을 브랜드의 핵심 이미지로 내세워왔다.

카카오톡이라는 서비스 자체가 그렇다. 가볍게 웃으며 대화하고, 일상 속에서 위트 있게 소통할 수 있는 도구. 그런데 정작 무대 위 발표는 정반대의 분위기를 풍겼다. 긴장된 표정, 어색한 흐름, 듣는 사람에게 전달되기보다는 스크립트를 읽는 데 급급한 태도. 경쾌하고 즐거워야 할 카카오스러움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웠다. 오히려 관객이 혼나는 기분, 혹은 시험장에 앉은 듯한 공기만 남았다. ‘카카오스러움’이란 사람들 사이의 거리감을 줄이고, 복잡한 것을 단순하게 풀어내며, 때론 위트 있게 상황을 전환하는 힘이다.

카카오가 가진 가장 큰 자산도 바로 그 가벼움과 친근함에 있었다.

하지만 무대에서 그 정체성이 드러나지 못했을 때, 관객은 메시지에 공감하기보다 어색함을 더 크게 느낄 수밖에 없다. 발표가 브랜드 경험의 연장이라면, 무대 위에서 카카오스러움이 살아나야 했다.

이미지 = 카카오 공식유튜브

특히 눈에 띄는 건 웃음과 박수가 거의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글로벌 테크기업의 행사에서는 작은 농담에도 웃음이 터지고, 새로운 제품 데모가 성공하면 자연스럽게 박수가 이어진다. 그 반응은 발표자의 긴장을 풀어주고, 무대의 에너지를 증폭시키는 순환 구조를 만든다.

하지만 if kakao 무대에는 그 순환이 사라져 있었다. 왜일까?

이유는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최근 카카오의 분위기가 좋지 않다. 오너의 사법 리스크, 직원들에 대한 포렌식 동의 요구 등 좋지 않은 이슈가 이어지고 있다. 발표자들 또한 이런 분위기를 무시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둘째, 일방향적 전달 구조 때문이다. 발표가 보고 형식에 머물면 청중은 참여자가 아니라 관찰자가 된다. 발표자가 즉흥적인 멘트나 가벼운 농담,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을 보여줄 때 웃음이 생긴다. 그러나 지나치게 틀 안에 갇히면 청중은 긴장감을 그대로 느낄 뿐이다.

셋째, 브랜드 톤과 무대의 괴리다. 카카오는 원래 위트 있고 친근한 이미지로 사랑받았다. 하지만 발표는 그와 정반대의 톤을 보였다. 청중은 브랜드와 무대 사이의 불일치를 직감적으로 느끼고, 반응할 여지를 잃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무대에서 보여준 카리스마는 완벽한 대본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제품을 진심으로 사랑했고, 그 감정을 자기 언어로 전했다. 생생한 감정이 관객에게 전염되며 혁신의 상징이 됐다. 반대로, 완벽히 다듬은 영상과 대본만 남은 무대는 화려해도 공허하다.

플랫폼기업의 신제품 발표 행사라서 “서비스가 중요하지 발표를 잘하는 게 꼭 중요한가?”라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너무나 크게 기대치를 끌어올린 신제품 발표행사는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라, 브랜드 전체의 인상을 압축해 드러내는 순간이다. 그 차이가 결국 글로벌 빅테크 플랫폼과 한국 플랫폼 기업의 격으로 이어진다. 앞으로는 카카오가 이런 무대에서 본연의 카카오스러움을 되찾고, 더 진정성 있고 경쾌한 발표로 성장해나가길 바란다.

브랜드큐레이터 칼럼니스트  shshin@olimplanet.com

관련기사
저작권자 © KMJ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